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오바사바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기어이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