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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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5    업데이트: 19-05-2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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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 정하해 - 2015.06.19 - 대구일보 오피니언
아트코리아 | 조회 1,770

늦은 점심을, 동료들과 먹기 위해 붐비는 식당 구석에 앉는다 적조했던 동안을 한 사람씩 꺼내는데 그는 지난여름 한 일에 대해 말한다 전류 흐르는 파리채로 모기 잡은 일인데 고것이 앵앵거리기만 하면 채를 휘둘렀다는데 그래도 목숨이라고 찌지직 빛이 나더라는데 모기들 화형식 여름 내내 했다고 한다.

우리는 박장대소 모처럼 실컷 웃었는데 눈물까지 찔끔거렸는데 헌데 그 화형식 팔라고, 천 원짜리 내는 이가 있었다.

그걸 생업삼아 천원어치 큰일 내 볼 거라고, 그 이의 생업을 우리는 아는지라 큰일 낸 소문만 기다리자 하고는 다시 바쁜 세상으로 흩어져 살아갔다. 그런데 퍼덕대는 나뭇잎 탓, 아니면 밑천 바닥난 내 생업 탓인지 요즘 들어 흰 재가 수북 쌓이면서 왜 그때 팔려나간 모기화형식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자리 잡는지.

 

 - 계간 <주변인과시> 2008년 여름호 .............................................................................................................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미풍양속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구의 주류문학인들 사이에선 남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어여쁜 말씀을 배타적 독점권으로 차지하려면 천원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오랜 관습이 있다.

법통에 가까운 그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낯설게 여기는 사람은 필시 그 동네에선 판에 끼지 못하는 부류이거나 비주류 인사들일 게다.

물론 범사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고마움 또는 미안함에 대한 사례와 보상으로 그 천원이 통용되기도 한다.

시인은 밑천이 바닥났을 때 그 모기 화형식이 생각났던 게다.

그리고 슬그머니 그걸 가슴으로 들여놓으려는데, 양심에 찔렸는지 그 미필적 고의성 편취의 정을 절도행각으로 스스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찌지직 빛이 나는 모기 화형식을 작업 공정에 본격 투입은 못하고 은근슬쩍 그 과정의 변죽만 차용하여 시를 한 편 주물렀다.시 창작의 방법과 경로엔 여러 갈래가 있다.

어쩌면 전도서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란 말처럼 순수한 독창은 드문 일일지도 모른다.

기실 학문과 과학의 발전은 숱한 학자들이 오랜 세월 십시일반으로 보탠 연구결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뤄진 것이리라. 문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시 또한 언어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문학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남의 작품을 쌔벼서 짜깁기한 글까지 시로 쳐줄 순 없다.영혼도 독창적인 전율도 없이 쓰진 시는 시가 아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전율하지 않는 사람은 한물간 사람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져라고 말했다. 그렇듯 하물며 시인일진데, 자연이든 사람에게서든 생의 전율을 느끼지 않고는 시를 쓸 수 없다.다른 이의 글에서도 스파크 같은 전율이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이때의 독서는 간접경험이 아닌 직접경험으로 치환될 수 있다. 이번 신경숙의 사랑의 기쁨을 아는 몸등의 표절부분은 사실 대수로울 게 없는 언어조합이다.

하지만 문제를 키운 건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는 작가의 불성실한 해명과 출판사측의 오만한 대응태도였다.

차라리 인용의 모자이크를 구축한 결과이며 미시마가 살아있다면 정중히 1천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당당한 변명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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