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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그립습니다] 장수경(대구미술협회 부회장) 씨 어머니 고 이순자 씨 / 매일신문 2022.4.4
아트코리아 | 조회 601
[그립습니다] 장수경(대구미술협회 부회장) 씨 어머니 고 이순자 씨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준 꽃밭이 작품의 원천…감성은 아름답게 재조명돼


장수경 대구미술협회 부회장(사진 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고 이순자 씨. 가족 제공.


엄마가 떠나신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계절마다 엄마는 나를 찾으신다. 아니 내가 엄마를 놓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뇨 합병증으로 망막에 손상이 와서 급격한 시력저하에 엄마는 "하나도 안 빈다" 라는 말을 달고 사시면서도 해마다 김치며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을 만들어놓고 가지러 오라시며 "이번이 마지막이다. 인자 하나도 안비서 못하겠다" 라는 말씀을 꼭 하신다.

"아마도 엄마김치 10년은 더 얻어 먹을걸" 하고 나는 받아친다. 엄마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누는 우리 모녀의 대화법이다. 막내로 자란 엄마는 엄살도 심하고 공주병도 있다. 내가 입은 옷도 부러워하고 내가 쓰던 모자도 달라시며 잘 쓰고 다니셨다. 나랑 외식이라도 하는 날엔 동네 어르신 친구들에게 자랑하시며 즐거워하셨다. 엄마지만 친구같았고 어떨 땐(고인에겐 죄송스럽지만) 내 동생 같을때도 있다.

하나도 안보인다는 말씀도 자식들에게 관심받고 싶어하는 엄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계단이 보이지않아 넘어지기가 일쑤였고 늘 먹는 약도 보이지않아 다른 약을 드실때도 있어 동생과 나는 항상 신경을 써야했다. 한번은 같이 외출한적이 있는데 가까이 있는 나를 찿아내지 못해 어린아이처럼 불안해 하는 일도 있었다.

일상 생활이 점점 더 불편해짐에따라 엄마는 나를 찾는 횟수가 늘어 갔지만 나 역시 바쁘다보니 볼멘 소리를 낼때가 많았다.엄마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찿으셨고 나는 엄마의 해결사였다. 때로는 엄마의 나에 대한 기댐이 부담스러워 짜증부릴 때도 많았지만 나 역시 엄마를 많이 의지 하고 살았다. 늘 숨쉬는 공기처럼 엄마는 그렇게 항상 계실 줄 알았다.

어릴적 엄마의 손을 잡고 둑길을 걷다보면 내 눈에 들어오는 동글동글한 파꽃이 신기하고 경이롭기 까지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엄마는 한 걸음에 둑길 밑으로 내려가 파꽃을 몇 개 툭툭 꺾어 고사리손에 쥐어주셨다. 손에 쥔 파꽃은 무거운 머리를 이기지 못해 매운 파냄새와 함께 꺾여져 생각만큼 이쁘지 않았다. 한번은 엄마가 파꽃을 꺾어주다 파밭 주인과 실랑이를 한적도 있었다. 나 때문에 싫은 소리를 듣게한 것 같아 어린 마음에도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동생이 태어나자 우리가족은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 엄마,아빠가 작은 꽃밭을 만들어 주셨다. 그 곳에는 맨드라미, 수국, 채송화, 나팔꽃,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파도 심었다. 친구들이 별로 없어 심심했던 그 시절에 유난히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꽃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으며 그때부터 화가의 꿈을 키웠다.

그 후 직업군인이신 아버지의 넉넉지않은 살림에도 미대에 진학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해주셨다. 결혼 후 세 아이의 육아 때문에 그림을 쉬기도 했지만 든든한 엄마의 지원으로 다시 그림을 시작하고 사십 넘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누구보다 기뻐해주셨다. 어린시절 엄마가 만들어 준 작은 꽃밭은 내 작품의 원천이 되었고 엄마가 심어준 감성들은 내 작품 속에서 더 아름답게 재조명된다.



장수경 화가의 '엄마 만나러 가는 길'. 펜 스케치 후 채색. 장수경 화가 제공.


엄마에게 보여지는 세상이 점점 좁아져 올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계절마다 바뀌는 나무의 자태를 볼 수 없다는 상실감에 얼마나 두렵고 슬펐을까? 오늘처럼 흐드러지게 벚꽃이 핀 날, 나는 엄마를 따뜻하게 받아주지 못한 나의 무심함에 또 후회의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사랑이 많으신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남매 걱정만 하고 계실것같다.

그리고 엄마의 응석어린 푸념이 그립다. "저 벛꽃 보는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다. 벚꽃형태가 점점 안빈다. 저래라도 볼수있으면 좋을낀데…."

- 찬란한 어느봄날 엄마를 그리며…. 딸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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