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    업데이트: 20-12-11 11:16

언론&평롱

물빛 지화자의 건강하고 순정적인 화훼화의 세계
관리자 | 조회 488
물빛 지화자의 건강하고 순정적인 화훼화의 세계

서예가와 현대문인화가

물빛 지화자 선생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지 선생은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손에 잡았던 지필묵을 결혼한 후 주부로서의 모든 업무를 성실히 치
루어 내면서도 놓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가꾸어 온 작가이다. 처음 시작한 것은 서예였다. 1970년대에 대구의 유명 서예학원 중 하
나인 상록서예학원에서 붓을 잡기 시작해 한문 서예와 한글 서예를 여러 고명하신 선생님들에게 오랫동안 배웠다. 서예가로서의 등용문인 매일
서예대전, 경상북도서예대전, 대구광역시서예대전 등을 통과하며 초대작가가 되었고 서예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석경 이원동 선생에게 그림을 배웠고, 서예와 문인화로 대한민국 서예대전의 초대작가가 되었다. 이번 작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이의 물성이 잘 발휘되고, 먹빛의 강약과 발묵(潑墨)과 파묵(破墨), 선염(渲染) 등 농담 활용이 원활하며 붓의 활용도가 높은 것은 오래 다루
어온 만큼 지필묵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작은 현대 문인화에서 즐겨 다루는 화훼절지와 사군자를 그린 것, 그림과 서예와 시가 1:1:1의 
동등한 위상으로 서로 어울린 것, 서예 등 세 부류이다. 

서예 작품은 한글 궁체 6폭 병풍 한 채이다. 궁체(宮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여성들이 쓰던 필체여서 이런 이름으로 부르게 된 한글서예의 고
전 서체이다. 서사자(書寫者)가 여성이어서 풍격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상류계층에서 통용되며 이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서사(書寫)상궁들에 
의해 다듬어지며 세련미를 더해온 글씨여서 정중하고 우아한 맛이 뛰어나다. 궁체는 잘 완성된 훌륭한 서체로서 지금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다. 그
래서 고전이 된 것이다. 

감상자에게 고전은 찬탄의 대상이지만 자신의 예술을 해야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고전은 학고지변(學古知變)하고 감고개금(鑑古開今) 해야 
할 변화의 대상이다. 고전이 충실히 공부해야 할 소중한 자원으로서 일용할 양식임은 어느 예술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서예는 더욱 그렇다. 
그런 만큼 지변(知變)과 개금(開今)은 쉽지 않은 힘든 길이다. 물빛 선생께서 고전을 자신의 예술적 개성과 지금의 시대적 감수성으로 재창조 해 
한글 서예의 길을 놓지 않고 서예가와 현대문인화가 두 가지 길을 아울러 가시기를 희망한다. 


그림과 서예와 시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매난국죽이나 소나무, 오동나무 등의 군자화목(君子花木), 연꽃이나 모란, 수선화 등의 꽃, 복숭아, 비파, 포도의 과일 등
의 그림은 사군자, 화훼, 소과(蔬果)라고 불렀던 화목(畵目)이다. 현대문인화는 예전부터 그려왔던 이러한 화목을 모두 포괄하여 주요 제재로 삼
는다. 지 선생 또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비롯해 능소화, 장미, 연꽃, 등꽃, 나팔꽃, 붓꽃, 해바라기꽃 등 여러 종류의 화훼를 그려왔다. 이
번 전시에는 석류, 복숭아, 수박, 감 등 주변에 흔한 맛있고 정겨운 과일을 그린 소과화를 비롯해 화훼화, 사군자화가 고루 있다. 
현대문인화는 백익무해(百益無害)한 이타적 존재인 식물의 세계가 주류를 이룬다. 식물은 그 자체로서 기쁨과 위안을 주는 존재다. 유화를 그
리는 서양화가들도 꽃이나 과일을 즐겨 그리는데 ‘사과작가’, ‘대추작가’, ‘복숭아작가’ 등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 가지를 전문적으로 그리기도 한
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소재가 꽃이고 과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파>, <수박> 등의 작품에서는 그림과 글씨와 시, 세 가지가 나란하게 어울렸다. 저울로 달아 볼 수 있다면 이 셋의 무게가 꼭 같을 
것 같다. 작가가 서예가이자 화가여서 화(畵)와 서(書)가 대등하게 균형을 이룬 것은 그렇다고 해도 시(詩)는 보통의 경우 그림을 보조하는 역할
을 맡을 뿐이고 현대문인화에서는 위상이 더 쪼그라들었는데 왜 이렇게 시가 무거운 걸까? 이 시들이 바로 물빛 선생의 배우자 이종문의 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은연중에 이런 구성이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병풍을 비롯해 이번 전시에서 활용한 시는 거의가 시조시인이자 계명대
학교 한문교육과 교수인 이종문 시인의 시이다. 

그림에서 시는 대부분의 경우 화의(畵意)를 풍부하게 해주는 화제의 역할이 주어질 뿐이고, 시가 주체가 되는 시화(詩畵)나 시의도(詩意圖)라
면 그림은 시정(詩情)을 이미지화하여 상상력을 보충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화가와 시인의 협업인 것 같은 화면이 이루어졌
다. 흔치 않은 독특한 예이다.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이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거나, 그림에 시와 서를 갖추는 시서화 삼절
의 전통이 있었다거나, 융복합의 시대라거나, 개인사적인 특수성이라는 빌미를 붙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방향의 작업이 의미 있으며 더욱 성장시킬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노란 열매와 검은 잎, 현대문인화를 생각함

잘라 놓은 한 조각을 그린 <수박>은 속살은 붉은색, 껍질은 녹색, 속껍질은 흰색, 씨는 검은 색이다. <비파>에서 비파 다섯 알은 비파색, <복
숭아>에서 복숭아 두 알은 복숭아색인데 비파 잎과 복숭아 잎은 검은색이다. 싱싱한 비파 열매가 달려 있는데 왜 비파 잎은 나뭇잎 색인 녹색이 
아니라 검은 먹색일까. 사실은 의아한 일이다. 사과이든, 대추이든, 복숭아이든 대상을 눈앞에 놓고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서양화가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회화적 관습을 설명하자면 중국에서 9세기 말인 당나라 때 색채를 배제한 수묵화가 탄생했고, 지식계층이 고급 감상 회화
의 창작자이자 감상자, 수요자로서 주도권을 잡으며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를 중시하고 필묵성을 위주로 하는 미의식을 주류로 회화사가 이
어져온 중국과 한국의 미술사를 모두 소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수박은 작가가 평소 알고 있는 대로 작가의 생각대로 그렸기 때문에 먹색이 굳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
나 비파와 복숭아 또는 이와 유사한 소재들은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주입된 선(先) 이해와 체본(體本)으로 익히며 배운 바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관습은 의문을 갖기 어려운 당위로 내면화되며, 먹빛은 대체재가 거의 불가능한 확고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 분야의 작가라
면 모두 인정할 것이다. 이번 전시작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먹과 담채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런데 <석류>와 <붓꽃>의 잎사귀
는 녹색이다. 작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나가게 될지.....
색채의 문제 뿐 만 아니라 현대문인화의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자이건 한글이건 화제의 문제도 있고, 낙관과 서명도 어떤 방식이 되든 현
대회화로서 짚어 보아야 하며, 지난 세기까지의 관습적인 범주를 훨씬 넘어서며 확장되고 있는 제재와 기법과 재료의 문제도 있다. 
지켜보는 자로서는 현대문인화가들이 당면한 과제들을 진지하게 돌파하며 자연을 소요하고 인생을 관조하는 지필묵의 사의(寫意) 회화로 현대
문인화를 성장시키기를 바랄뿐이다. 지 선생님께서 자신만의 선명한 방향으로 더욱 파이팅 하시기를 바라며 글쓴이 또한 ‘취집’한 연구자로서 각
별한 응원을 보낸다. 

“그대는 거대한 자석 나는 작은 못이다가 / 나는 거대한 자석 그댄 작은 못이다가 / 결국은 그대가 자석 나는 작은 못대가리.”
<부부> 이종문

 
2019년 9월 이 인숙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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