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전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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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6    업데이트: 13-09-12 22:20

언론 평론

< 새해작업실 > 서양화가 전선택씨 - 1998-02-12 - 김문수 기자기자 -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851

< 새해작업실 > 서양화가 전선택씨 김문수 기자기자

 

1998-02-12

 

대구시 수성구 신매동 한서타운 260동 301호는 원로 서양화가 전선택씨 의 화실을 겸한 자택이다. 야트막한 뒷산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방 한칸을 작업실로 꾸며 희수 (喜壽)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작업을 하고 있는 원로화가 전씨는 고향을 북에 둔 월남 작가들에게서 흔히 읽을 수 있는 그늘진 노인의 모습이라 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밝고 건강하다.

 

하지만 그가 펼쳐보이는 10여 점의 화폭에는 동심과 사랑, 애틋한 향수를 염원하는 작가의 창작세계 를 쉽게 엿볼 수가 있다. 그가 줄곧 천착해 온 사랑과 향수는 고향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작가의 정신세계를 조형언어로 승화시킨 것. 특히 그의 그림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새와 나비, 구름 등은 휴전선 너머 가고픈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실향민의 염원을 대신한 매개물로 표현하고 있다.

 

1922년 평북 정주군 임포면 원단리 1315에서 태어난 그는 오산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수학하고 해방을 맞아 귀국 했다. 그러나 고향에서 화가로서의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46년 자유를 찾아 단신 월남했다. 이듬해 가족과 상봉한 후 청주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나 50년 6.25전쟁으로 1년간 군복무를 한 뒤 51년 대구에 정착해 50 년 가까이 살아왔다.

 

전씨는 지난 78년 대륜중.고등학교에서 교직을 그만둘 때까지 4반세기 동안 대구지역 교단에서 미술선생으로 후학을 지도했다. 이후 그는 전업작가로 변신해 최근까지 20회의 개인전을 개최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96년 그가 펴낸 '고독에서의 해방을 위하여'라는 수상록의 머리말에 "나는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작가라기보다는 늘 화학도(畵學徒)와 같은 기분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런데 어느덧 이렇게 고희(古稀)를 훌쩍 넘겨버렸다" 고 지난날을 겸손하고 담담하게 회상하고 있다. 가끔 잊지않고 찾아주는 제자들을 누구보다 반갑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전씨는 청년작가 못지않게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화실에서 작업을 하고 건강과 작품구상을 위해 인근 야산자락을 한두시간 정도 산책하고 있다.

오는 가을쯤 봉산동 화랑가에서 스물한번째 개인전을 갖기 위해 요즘은 하루도 쉬지않고 그림에만 전념하고 있다. 주관적이고 환상적인 내면세계의 표출에 주력해온 전씨는 구상과 추상의 사이를 넘나드는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상회화를 추구하면서도 대상에서 얻은 느낌들을 추상적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그는 동심과 사랑, 향수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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