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전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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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평론

- 2010년 09월 14일 - 매일신문 - [대구근대미술의 향기] 전선택 ‘마부’
아트코리아 | 조회 1,034

[대구근대미술의 향기] 전선택 ‘마부’


당나귀, 달구지…1950년대 거리의 풍속도

 

요즘은 거리에서 수레를 끄는 말을 잘 볼 수 없다. 말뿐만 아니라 소나 당나귀 같은 큰 짐승은 농촌을 가더라도 보기 힘들다. 이런 가
축이나 가금류들이 단순히 육류 소비의 대상일 뿐이지 직접 함께 살던 생활과 동떨어진 지 오래다. 말은 짐꾼의 생계수단이자 고락을 같이하는 반려동물로서 도회지 길에서 가장 흔히 보는 가축의 일종이어서, 예전에는 자연스레 그 생김새는 물론이고 걸음걸이, 울음소리, 냄새, 표정, 특유의 버릇까지 행인들에게조차 친숙했던 것 같다.

 

고즈넉이 빈 수레에 앉아 일감을 기다리는 마부가 영 심심해 보이지만 물끄러미 말을 쳐다보며 무료함을 달랜다. 말 없는 짐승의 무심한 표정에서 주인과의 돈독한 정이 느껴진다. 일 속에서 나누는 동물과의 이런 교감은 이제 사라지고 대신 개인과 밀착된 애완동물들이 느는 세태다. 가벼운 수채화 한 점에서 시대의 변화와 지난 생활에 대한 정서의 일면을 읽는다.

 

작가는 평북 정주가 고향이며 그곳 오산학교를 나왔다.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이 세워 시인 소월과 백석과 화가 이중섭을 배출한 학교다.

 

여기서 우리 근대미술사의 최초 구미유학파들인 임용련과 백남순 부부의 지도로 그림을 배웠다. 졸업 후 도쿄의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해방되던 해 곽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지면서 화가로 출발했으나 분단과 함께 월남해 뒤이은 전쟁의 소용돌이까지 힘든 역정을 겪고 막 대구에 정착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다.

 

나무로 짠 수레에 달린 바퀴는 살이 없는 자동차용 휠에 고무 타이어가 채택돼 있다. 6`25때 다량 들여온 군수물자의 부산물로 대체된 것 같다. 좌측 하단의 서명에 55년이라는 숫자가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시점임을 알려준다. 작가는 김천 등지에서 교편을 잡으며 보낸 10여 년의 타향살이 끝에 54년 대구에 정착했다. 다시 새 작업을 시작하며 도회지 이곳저곳을 스케치한 것이 이런 수채화 몇 점으로만 남았지만 그 편린들을 통해 개인의 한 시대뿐 아니라 당시 대구의 정취도 고스란히 전한다.

 

모델이 된 말과 주인이 눈치채기 전에 재빠르게 대상을 포착해 연필 선 없이 현장에서 바로 붓으로 그렸다. 속도감 있는 붓질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담채로 그리면서 짙은 물감으로 윤곽을 강조하고 사물의 형태에 양감까지 넣어 완성했다. 색채와 형태의 조형적 요소도 좋지만 특히 사람의 뒷모습과 말의 앞면 인상을 통해 정서적인 분위기까지 잘 담아냈다. 이렇게 빠른 스케치를 통해서도 사물의 특징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작가의 기량이지만, 유랑에 가깝던 어려운 한 시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비록 본격적인 캔버스 작업은 못해도 이런 간편한 수단에 의한 창작을 쉼 없이 추구한 뒤 얻은 결과일 것이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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