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전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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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6    업데이트: 13-09-12 22:20

언론 평론

전선택 - 꿈같은 환상, 순수한 동심세계| - 김영동
아트코리아 | 조회 1,041

평북 정주가 고향인 전선택화백은 일제강점기에 민족학교로 이름 높던 오산학교를 나왔다.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이 세운 그 학교는 시인 소월과 백석을 배출하였고 화가로는 이중섭이 또한 그곳 출신이다. 전화백은 이 학교에서 구미유학파들인 임용련과 백남순 부부의 그림 지도를 받았다. 졸업 후 도쿄의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画学校)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중농 가정의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반대를 무릅쓴 미술공부라서 고학에 가까운 유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월남에 뒤이은 전쟁의 소용돌이까지 힘든 역정 끝에 안정된 작품 활동은 대구에 정착하고 나서야 재개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선생의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들은 50년대 초반에 제작된 몇몇 소품들이 전부다. 전쟁 직후 어려운 물자난에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라 주로 소묘와 수채화를 많이 제작했는데 소재는 생활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친근한 대상들이었다. 「닭」('54), 「청어」('55), 「말과 수레」('55) 등에서 보듯 가까운 현실에 눈을 돌려 재현한 것에서 사실적인 시각이 확인된다.

 

50년대 후반부터는 화면에 구성적인 요소가 점차 높아지고 추상에 가까운 작업들도 간혹 나타난다. 6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경향 속에 얼음의 결정을 그린 「동결」('58)과 「얼굴」('60)이란 작품은 완전한 추상 작품 같다. 이 무렵 또한 가장 충실하게 묘사한 단계의 사실적인 작품들도 동시에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서 「석공」('62)은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작품인데, 돌을 다듬는 인물의 노동을 재현하는 사실주의적인 수법보다도 소재에 던지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에 더 관심이 가는 그림이다. 선생은 이런 그림들로 몇 차례 국전에 출품하서 입선하는 경험을 했지만 곧 그 폐해를 깨닫고 '反국전' 파로 돌아섰다. 국전에 대한 외면은 모든 아카데믹한 관전과 아예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 결과 한결 폭넓게 주제를 탐색하고 형식도 추상과 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모티프의 발견도 자신의 삶과 주변의 현실로부터 내면의 주관적인 내용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자유로움에서 시작한 이후의 구상세계는 인생과 자연에 대한 관조를 향해 나아간다. 소재는 주로 산과 구름, 꽃과 나무, 그리고 여인과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이런 것들은 실향에서 비롯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거나, 현실의 이상으로서 꿈같은 환상을 표현하며, 곧잘 동심으로 이끄는 정경으로 나타난다. 현대 미술은 순수한 표현을 얻으려고 원시미술에서 창안을 배우거나 고의로 기교를 배제하기위해 자동기술법(automatism)에 의존하기도 하고 지적으로 미숙한 어린아이의 유치함을 흉내 내기도 한다. 인습으로부터 자유로운 꾸밈없는 표현은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전선택선생의 예술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세계로 특징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과 정감어린 소재를 통해 심미적인 감각에 호소하는 온화한 형태와 조화로운 색채는 순수한 동심을 닮은 작가의 깨끗한 성품의 반영이라고들 한다.

 

광범위하게 신 구상 그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90년대까지의 작업들은 구체적인 현실의 대상들을 단순화시키고 평면화한 화면구성에 의해 특정한 정서를 반영한다. 중요한 것은 주제의 감정과 일치시킬 수 있는 적합한 조형적 형태를 창조하는 것인데, 정서적으로 어울리는 상을 얻을 때까지 반복해서 수정한 최종 이미지에는 오랜 탐구의 흔적이 남아있다.

형식주의와 표현주의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화면에 질서와 생명감을 동시에 확보하는 균형은 화면을 다루는 구성주의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주제와 소재에 대한 작가의 사색은 추상 화면에도 생기를 불어넣는 요인이다. 균형 잡힌 조화로운 감정은 사물을 대하는 관조적 태도 속에서 항상 대상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때문인데 익살스러운 표정의 「얼굴」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관념적인 내용을 표현하고자할 때 추상 형식을 택한다. 어떤 경우에도 완전한 비대상적인 질서를 추구하지는 않고 근래의 「잠재력」이나 「저력」 같은 시리즈에서 보듯 추상적인 이미지라도 역동적인 정신을 상징하거나 은유한다. 즉 직접적인 대상의 형태로부터(이를테면 팔의 근육에서 착상하여) 추상되고 묘사된 결과들이다. 이와 같이 형태는 구체적인 모티프에서 유추되어 천착한 결과들이다. 색채는 화면에 공간감과 깊이를 주고 조화롭고 깊은 정감을 자아내 세련되고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90년대 이후 장식성이 강한 화면의 색채들에서조차 명랑한 기분을 조성하며 대상과 무관한 순수한 가치로 높여져 있다.

 

지금까지 선생의 작품세계는 돌아보면 한마디로 순수한 마음에 비친 인생과 자연에 대한 관조의 세계가 그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현실에서 나온 모티프는 선생의 회화적 관심이 생활의 표현이고 비록 관념의 조형화일지라도 당연히 현실과의 대화와 사유의 표현이다. 그 속에 사물에 보내는 다정한 눈길이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지치지 않는 창작의욕의 바탕이 되어 선생의 작가적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나 선생의 작품을 대하면 좋은 형태와 순수한 색채가 주는 생명의 율동과 조화로운 감정을 느낀다.

 

/  미술평론가 김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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