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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살던고향은] (46) 화가 장이규의 경주 - 2012.05.26 매일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2,269

[나의살던고향은] (46) 화가 장이규의 경주
유난히도 짙고 깊은 계림, 개구쟁이 여름 놀이터이자 미술학원

 

 

 


고향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눈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그리움이 시작되어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곧잘 이어진다.

유독 철없던 시절의 일면들이 강렬한 기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고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경험하는 애잔한 그리움이리라.

내 기억 속에서 맴도는 어린 시절은 여름으로 시작된다. 추위 속에서 칩거하던 겨울이 끝나고 훈풍에 실려오는 따사로운 봄도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인 만큼 풍요로운 가을 들판도 생각날 법한데….

 

유난히 내 가슴속에 여름이 커다랗게 존재하고 있는 까닭은 다양한 자연의 소리가 풍요로운 계절적 특성도 한몫을 했지만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꾸러기들이 일구어 놓은 행복한 기억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고향 경주는 천년왕조 신라의 수도였던 만큼 눈길이 머무는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며 다채로운 문화와 설화가 숨 쉬는 곳이다.

 

경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도심 한가운데 산처럼 솟아있는 거대한 고분인데 이는 인공적 구조물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늘 서 있었던 것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다.

2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은 17대부터 22대까지의 김씨 성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하늘을 나는 천마가 그려진 말안장이 출토된 천마총과 왕과 왕비가 함께 묻힌 쌍분인 황남대총도 대릉원의 일부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잘 어우러진 삼릉, 오릉 등 대릉원이 아니더라도 150여 기의 고분들이 산재해 있어 독특한 풍광을 연출하며 여행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초석만 남아 천년 고도의 풍상을 느끼게 하는 황룡사지, 신라의 대표적인 유적인 불국사와 석굴암, 산 하나 통째로 사찰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과 탑들이 널려 있는 곳으로, 신라인들이 이루려 했던 불국토의 염원을 담은 남산 등 도시 전체에 유형무형의 유적들이 지금도 숨 쉬고 있다.

수없이 많은 경주를 소개하는 글을 여기서 더 나열해 무엇하랴. 

대릉원 남쪽에 널려 있는 유적지 중 신라궁터 반월성을 향해 오솔길을 따라가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가 있고, 대릉원에 묻힌 김씨 왕족들의 시조인 김알지가 탄생한 계림이 나온다. 계림이란 닭과 관련된 이름의 숲인데 계림의 나뭇가지에 오색 영롱한 서기와 함께 금궤가 걸려 있고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닭이 궤를 품고 있어 열어 보았더니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아이의 총명함을 높이 사서 알지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金)씨라 했다. 그리고 닭이 울어 좋은 징조라 하여 그 숲을 계림이라 했다. 계림은 개구쟁이 시절에 해 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곳이며 내 어릴 적 기억을 모두 담아 두고 있는 추억의 상자이기도 하다.

계림의 여름은 유난히도 짙고 깊었다. 그래서 더욱 두터운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한 놀이, 술래잡기, 숨바꼭질은 기본이고 꽝지리, 개미집 등 기억하지 못할 만큼의 다양한 놀이들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또한 나무타기에 능했던 나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면서 매미를 쫓아 놀았다. 까맣게 물든 숲에서 반딧불 따라 뛰어다니던 밤도 새롭다.

하이얗게 빛바랜 강가의 모래 언덕에서부터 하늘을 어둡게 만들면서 시작되는 소나기 속에서도 한여름의 계림은 늘 꼬맹이들의 천국이었다. 조무래기들은 계림에 가을 기운이 깊어질 때까지 구석구석을 쏘다니면서 여름을 만끽했다.

 

오십 고개를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여서일까. 화가란 직업으로 살면서 화폭을 메우고 닦으며 지나온 굽이굽이를 돌아본다.

깊은 계곡을 건너 준령을 넘고 황량한 개활지를 가로질러 갖가지 모양들의 길을 지나 여기까지….

그 길 저쪽 출발점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기도 하고 설익은 화가의 꿈이 서려 있기도 한 계림이 보인다.

제2의 솔거를 꿈꾸며 미술부 활동을 하던 때 미술학원 하나 없던 경주에서 계림은 하나의 미술 아카데미였다. 학교를 파하면 화구를 챙겨들고 친구들과 함께 계림으로 향하여 그림 공부에 열중했고 서로의 꿈을 키워나갔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신비한 분위기를 주는 이 숲에는 화가들의 왕래도 많은 편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손일봉 선생님은 그 당시 경주여고 교장 선생님이었고 또한 화가로서도 유명한 분이었다. 가끔씩 계림을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의 캔버스에는 차곡차곡 물감으로 메워진 또 다른 하나의 계림이 태어났다.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히 의식의 언저리에 남아 있다. 짙은 여름날 복잡다양하게 얽혀 있는 숲의 표현 때문에 고민하던 때라 그 감동은 더하였다.

 

나뭇가지와 잎사귀 같은 것은 서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미로 같은 것이었으며 그런 대상을 어떻게 화폭 위에 완벽하게 표현할 것인가? 이는 구상 지향적인 작품을 담는 계기가 되었다. 경주는 내가 살던 고향이고 계림은 내 그림의 고향이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펼쳐보는 기억 속의 상자라면, 나에겐 여름은 강렬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는 한 폭의 선연한 그림으로 존재한다.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돌 하나도 범상치 않은 도시, 특히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던 내 고향 경주. 자랑스런 고향을 더욱 진지하게 노래하고 이 빛나는 여름에 계림과 반월성의 내음에 취하고 싶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 장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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