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    업데이트: 18-04-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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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십장생도에 장생복락 염원 담다_박재관(부산피플)
관리자 | 조회 639

따뜻한 십장생도에 장생복락 염원 담다
 
 
캔버스 속 십장생(十長生)이 살아 있는 듯 신성하다. 웅장한 산위로 해와 달이 뜨고, 산맥의 줄기를 타고 맑고 고운 구름이 노닌다. 다정한 사슴 한 쌍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투명한 시냇물에 거북과 잉어가 노닐고, 산과 들에는 불로초가 피었다. 두 그루 소나무는 그림 밖으로 푸른 기개를 형형하게 뻗쳐낸다.
 
화폭을 휘감아드는 고운 채색은 오방색(五方色)이다. 다섯 방향을 나타내는 오방색은 적, 청, 황, 흑, 백색. 화폭 가득한 오방색은 원색이 아니라 여러 색을 두루 섞어 세련되고 정갈하다. 장인영(張仁榮·73) 화백이 장생과 복락의 염원을 담아 그려내는 장생복락도(長生福樂圖)이자 십장생 그림이 그러하다. 일찍이 대통령상을 비롯해 청곡예술문화상, 대한민국 미술대상, 각종 전국공모전 입선 특선을 여러 차례 차지한 부산의 예인이다.
 
 
 
한국적 소재에 서양적 유화 접목
 
십장생은 민간신앙이나 도교에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10가지 사물. 거북, 사슴, 학,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산, 내, 해, 달을 꼽기도 하고, 해, 돌, 물, 구름, 소나무, 대나무, 거북, 학, 산, 불로초를 꼽기도 한다. 동양에서 거북은 학과 함께 가장 오래 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와 휘지 않는 대나무, 자연의 기본요소이자 인간의 수명장수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길상(吉祥)들인 해와 달, 구름과 물, 바위를 십장생으로 꼽는다. 그의 그림엔 장생복락을 기원하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전통 민화에 등장하는 가장 한국적인 십장생을 가장 서구적인 유화물감으로 부활시키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서구적이요, 또한 서양화이면서 한국화인 것이다.
 
“처음엔 풍경화를 열심히 그렸어요. 풍경화를 그리다보니 이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보편적인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가의 사인만 바꾸면 누구 그림인지도 잘 모를 정도로 비슷하다는 거지요. 우리나라 화가가 해외에 나가 풍경화나 인물화를 아무리 잘 그린다 해도 그들과 대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독창적 작품세계 구축
 
그래서 그는 독창성 있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함께 한 그가 고심 끝에 찾은 것은 민족의 혼과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민화.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이를 능가할 예술양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경쟁력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십장생도를 연구하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 25년여를 헤아립니다. 이젠 누가 그림을 봐도 ‘아, 이 그림은 장인영 그림이다’ 퍼뜩 알아채고, 인정을 해줍니다. 십장생도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그려왔지만 저처럼 20년 넘게 연구개발하며 그려온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저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이지요.”
 
그는 오랜 기간 십장생도를 그리며 전통적인 색채는 살리되 현대감각에 맞게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화와 현대화, 서양화를 접목했다. 캔버스 규격의 나무 패널을 만들고 그 위에 한지나 닥나무 종이를 뭉개어 발라 건조시킨다. 그 과정을 거치면 2~5mm의 울퉁불퉁한 마티에르 효과가 나타난다. 입체감이 생기는 것이다. 자신 만의 독특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면 작품 내용이 스토리를 가진 것처럼 구성된다. 온도, 습도가 자체 조정되는 닥나무 종이를 사용하고 채색도 안료나 유화물감, 아크릴류의 재료로 중량감과 화려함을 더해 준다.
 
 
 
국내외 초청·초대전 ‘인기’
 
그래서 그의 그림은 국내 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국내에선 그림이 갖는 소망과 간절함이 토속신앙과 맞닿아 있는데다 구도나 질감이 좋아서, 해외에선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서양화로 표현해 낸 독창성으로 인해 두루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해외에서 더러 초대전을 기획하고, 독일 유수의 일간지들이 그의 그림을 여러 차례 보도한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세계가 널리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 화백은 아직도 그림에 관한한 열혈청년 못잖다. 부산여자대학(부산여전) 교수로 미학과 철학을 강의하다 정년퇴임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 부산미술대전 운영위원,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 부산시립미술관 운영위원 등을 비롯, 각종 미술공모전 심사위원, 예술단체 삼양문화회 회장을 맡아 부산미술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힘을 보태고 있다.
 
 
 
미학 전공 박사, 실기·이론 겸비
 
그는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산골마을에서 자라며 철따라 찾아오는 산야의 고운 색감을 자연스레 익혔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배운 적도 없었지만 그는 그림을 잘 그렸고, 글을 곧잘 썼다. 초등학교 때 그림으로, 글짓기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땐 한 학기를 마치고 2개 학년을 건너뛰며 곧장 월반해 수재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
 
“서울의 한 구청에서 시행한 그림 공모전에 작품을 내 상을 받았습니다. 고교에서 영어교사를 하면서도 그림을 그려 교무실이나 휴게실에 20호 작품을 걸 정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아 화구를 짊어지고 혼자 야외 스케치를 수없이 다녔습니다.”
 
물론 화실에 나가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법을 응용하며 독창성을 가미해 나갔다. 대학은 우여곡절 끝에 건국대 법대를 나왔다. 그 우여곡절이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독히도 가난했던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석·박사 과정은 그로부터 한참 뒤 부산에서 밟았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살려 석·박사 과정에선 미학을 전공했고 현대철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부산여자대학에 재직하면서 미술과 미학, 생활예술을 가르쳤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같은 여러 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며 미술이론가로서의 면모도 다졌다. 화가이면서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한다.
 
 
 
즐겁게 감상하며 염원 이루길 기원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단체전과 11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단체전과 개인전 대부분이 초대전이다. 포스코 창사 36주년 기념 개인초대전, 일본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기획초대전, 서울 포스코미술관 개인 기획초대전, 독일 베를린아트센터미술관 개인초대전, 부산 현대백화점 및 울산 현대백화점 갤러리 개인초대전, 타슈켄트국제비엔날레 우즈베키스탄국립미술관 초대전, 중국 사천성미술협회 초대전, 독일 괴테문화원 초대전, 핀란드 트리엔날레 초대전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그의 그림도 독일 키포른시 국제문화박물관 3점, 독일 베를린아트센터미술관, 서울 포스코미술관, 포스코 포항본사 사옥, 부산여자대학 본관, 독일대사관, KBS 부산방송국, 충남 예산군 청사 등이 소장하고 있다.
 
“십장생도가 나타내는 사상은 장생과 복락입니다. 현실의 절박함과 소원하는 바를 해결하고 성취하려는 오방색과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오행, 오방위, 계절, 오늘날 미술치료에서 말하는 채색과 정신건강 같은 연계성을 저는 제 그림에 담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긍정적 사고와 가정에 사랑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2005년 APEC 정상회의장인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 대형 십장생도로 벽면을 장식해 놓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늘도 장생복락을 염원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세계에 혼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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