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    업데이트: 18-11-27 13:29

언론&평론

사진과 표현 - 이승백
관리자 | 조회 519
■사진과 표현■
 
사진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거의 모든 작가들의 경우 자신들의 사진을 발표할 때 기껏해야 짤막한 제목을 붙일 뿐 글을 이용한 별도의 추가 설명을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글을 보태는 일을 기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지고 그 결과 타인의 사진에 대해 방관적이거나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필자는 평소 이러한 작가들의 자세에 대하여 의문이었다. 보는 이와 보여주는 이가 서로 같은 세계에 들어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더욱 깊게 이해하는데 글은 아주 훌륭한 보완적 수단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진에 글을 이용한 작가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종전의 생각을 최근에 말끔히 지워버렸다. 예술에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는 기존의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표현이 사진의 여러 가지 중 하나라면 이영기의 사진은 철저히 표현을 위한 사진이라 할 것이다. 이번 개인전 출품작의 경우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풍경을 소재로 촬영한 것으로서 자신의 시각을 다양한 포맷을 동원하여 컬러 이미지의 풍경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과거 그의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가 만일 사진 작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택하는 소재나 프레이밍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그의 시각적인 안목이나 능력은 남달리 완벽하다. 그의 사진은 설명이 요구되는 사진이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태어난 것들이며 이 경우 작가에게 작품의 설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사진의 내용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용 사진이면 모르되 그렇지 아니하고 표현만을 위해 탄생된 경우에는 철저히 그 의도가 존중되어야만 한다. 사진이 예술로서의 지위를 굳힐 수 있었던 이유도 단순한 외양의 기록이나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를 너머 작가의 내면 세계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법이다. 사진만의 전시에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우리는 풍경사진가로 잘 알려진 로버트 아담스의 주장에 한번쯤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1992년 아담스는 American Art 겨울호에서 ‘왜 사진가는 설명할 수 없는가’(Why Can't Photographers Explain?)라는 글을 통해 작가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설명하는 순간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며, 사진에 글을 보탠다는 것은 그 보태는 만큼의 설명이 사진에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불과하여 결국 자신의 작품이 예술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자신 훌륭한 사진 비평가이자 이론가로서 상당한 양의 글을 발표했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 작가와 보는 이가 서로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문화를 누린다면, 그리고 보는 이가 사진이라는 표현 매체에 최소한의 기본 지식만 갖추고 있다면 별도의 설명을 사족처럼 달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진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그대로 밝힌 사진 작가의 발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이영기는 지난 개인전에서 그랬듯이 이번 개인전에서도 자신의 작품에 별도의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보는 이의 편안한 감상을 위해서 작가가 더 이상 할 일은 없어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표현 의도를 작품을 통해 충분히 그리고 성실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임무는 끝난 것이다. 이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전시장을 찾는 이의 몫이다. 훌륭한 비평가는 자신의 작품 대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얼마나 잘 읽고 해석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작가 이영기는 자신의 사진에 대한 자신의 설명보다는 전시장을 찾아 자신의 사진을 읽어주고 철저히 해석을 기꺼이 해주는 또 다른 눈과 입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1998년 2월
 
이 승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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