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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기고] 대구의 새 미술관에 대한 바람 - 2014-09-03 - 영남일보
아트코리아 | 조회 616

 

대구에 이우환 미술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오르내리던 소문이 ‘이우환과 그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구체적인 모양을 드러내면서 주위 사람들이 의견을 물어왔다. 그때마다 부당함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논할 가치도 없고 쓸데없는 소린 왜 하냐”고 몰아 붙였다. 왜냐하면 타 도시에서는 이우환의 연고 등 합당한 근거를 갖고 유치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대구시는 이렇다 할 연관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우환의 전문화된 개인미술관이 아닌 ‘만남의 미술관’ ‘이우환과 그 친구들’ 이라는 타이틀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소장비는 제쳐놓고 건립비만 400억원이나 들어간다고 한다. 진정 이우환을 위한 미술관인가, 아니면 그 친구들을 위한 미술관인가. 확실한 주체 캐릭터도 없다. 그리고 누구는 친구가 되고 누군 친구가 안 되는가. 무슨 애들 줄 세우고 편 가르기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언가 어정쩡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미술관 명칭 자체가 그렇다. 작가가 언론에 언급했듯이 자신은 그러한 요청에 응할 의사가 없고, 또 자기 작품을 다 내어놓고 개인미술관으로 올인할 마음도 없다는 뜻을 ‘불쾌하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대구시는 타 도시보다 먼저 유치하고 싶은 욕심에 두루 이해관계에 맞추어 ‘그 친구들’ 이라는 명칭을 급조한 모양새가 역력하다. 대구의 자존심을 접어두고 꼭 그렇게 하여 무슨 득을 보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새로운 미술관이 친근감과 지역성을 갖는 ‘이인성과 그 친구들’이나 ‘이쾌대와 그 친구들’은 왜 안되는가. 아니면 대구 출신으로 근대 5대 화가에 속하는 ‘변종하 미술관’ 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구는 서양화의 메카요 미술의 보물 창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찾아보면 좋은 인물과 다양한 재원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니 좀 더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여러 의견을 수렴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이우환 작가가 일본에서 활동하며 명성이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있다는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대구에 세워지는 미술관이 꼭 일본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건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한다고 하니 무슨 점령군이 갖는 거만함이나 장사치의 흥정 같다.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불쾌하고 입맛이 쓰다. 때론 대구에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대구의 역사가 그렇다. 일제 침략 후 일본은 조선의 상징성과 자존심을 말살하려고 왕이 살던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구도 달구벌의 상징인 달성토성을 동물원인 달성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영남의 대들보요 권위의 상징인 경상감영을 훼손해가면서 편리 위주의 휴식공간인 중앙공원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또 학문과 정치·경제·문화가 중심이 되고 최고의 지식층인 양반들이 집단으로 모여사는 곳인 교동을 온갖 시정잡배들이 들끓는 시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것도 서양사람들의 물건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양키시장으로 말이다.

이유야 어떻든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대구의 지도자나 시민들이 철학과 의식을 갖고, 좀 더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면 이럴 수가 있었겠는가. 중소도시인 전주에 가보면 전주감영을 중심으로 한옥촌이 잘 보존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 지역의 특산물과 먹거리 등을 체험하려면 2~3일이 걸릴 정도이다.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유지·관리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대구의 역사성·상징성·정체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대구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시민으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대구의 잘못된 흔적들을 회고하며 반성하고 우리 스스로가 결정을 심사숙고한다면 또다시 대구의 상징성과 정체성이 훼손되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 세워지는 미술관이 뼈아픈 흔적으로 남을 수 있는 제2의 달성공원, 중앙공원, 양키시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역사 앞에 증인으로 엄중하게 깨달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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