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    업데이트: 22-10-1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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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木愚 김일환金日煥의 작품세계| 미술학 박사 - 서영옥 평론
아트코리아 | 조회 1,142
|목우木愚 김일환金日煥의 작품세계| 

한恨의 메타포인 당산나무와 
나我무無의 경계에서


“…한(恨)은 밝음이고 깨달음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한을 얻고자 수행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략) 나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을 나무들의 모습으로 표현해보고자 한다.…”(김일환 작가노트)

화가 김일환은 그림으로 한(恨)을 풀어낸다. 한은 분출이 아닌 응고의 감정이다. 쌓이고 쌓이면 한이 된다. 흐르지 않고 고이면 응어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맺히고 서린 감정이 축척되면 깊어진다. 답답하니 풀어야 한다. 이러한 한이 기호의 형태로 표면화 된다. 이를테면 언어나 몸짓, 소리, 시각적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한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 중 가장 강렬한 의미가 기호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화가 김일환에게는 그것이 시각적 기호 즉, 그림으로 드러났다. 

화가 김일환의 근작은 한(恨)이 핵심 테마이다. 한의 단초는 다양하다. 주조를 이루는 것은 분노나 좌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비애감도 내재되어 있다. 이 부정적인 감정은 일시적이거나 강도가 약할 때보다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난다.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제로의 심리상태, 무화(無化) 또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체념의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화가 김일환은 이러한 한을 ‘밝음과 깨달음’과 연동시킨다. 

한풀이의 정점에는 카타르시스가 기다린다. 카타르시스를 수반하는 ‘한’은 ‘원(寃)’과는 다른 차원이다. ‘한이 해결불가능하거나 회복될 수 없는 사실임을 인지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원은 해결가능하다고 여기면서도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정황에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한은 혼자서도 풀 수 있으며 영구적이지 않다. 화가는 그림으로 그 한을 푼다. 바로 김일환이 취하는 방식이다. 그가 작업노트에서 밝힌 ‘밝음과 깨달음’이 표출되는 지점이다. 

김일환이 밝힌 한의 ‘밝음’은 흥(興)과는 다른 차원이다. 마음의 밝은 부분에 해당되는 흥은 양(陽)의 미감을 조성한다. 판소리나 민요 같은 한국의 전통예술에서 다가오는 흥은 즐거움 쪽이다. 반면에 한은 슬픔의 요소가 기반이다. 국문학자 신은경은 한을 “흥이나 무심(無心)과는 달리 복합적 성격을 띠는 미유형이다.”라고 한다. 천이두는 그의 책「한의 구조연구」에서 “한의 밝은 면은 어두운 면과 대등하게 존재하기보다 일종의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내포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문학과 지성사, 1993)”고 한 바 있다.

이렇듯 한의 요소와 해석은 다양하다. 일반미학에서는 한의 심리적 경험을 미적체험으로 이해한다. 풍류심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밝음’이며 ‘깨달음’이라고 한 화가 김일환의 한은 이성적인 통제 밖이며 미적체험과 풍류심을 두루 포괄한다. 그의 그림이 짓고 있는 다양한 표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징표로 우리가 김일환의 그림에서 수용하게 되는 것은 당산나무다. 당산나무가 김일환에게는 한을 대변하는 기호인 셈이다. 화가에게 미적 체험으로 자리한 당산나무가 어디서부터 촉발된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의 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는 한민족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하는 믿음의 상징체다. 화가는 당산나무의 우직함에서 어리석은 자신이 배워야할 교훈을 본다고 한다. ‘당산나무는 우리 민족 한의 정서를 가진 나무이기도 하지만 나의 심적 세계를 대변하는 나무다’ 라는 것이 김일환의 고백이다. 그가 당산나무를 그리는 추가적인 이유는 작업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희망의 끈을 맺힘이 아닌 
화해로 융해하고 응어리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나무를 택한 것”이다. 한은 바람과 직결된다. 바람은 곧 희망이다. 희망은 부정과 어두움의 반대편이며 밝은 기운을 발산한다. 한의 밝음을 노래한 김일환의 그림이 당위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화가는 나무가 좋아서 1996년에 숲이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가창의 골 깊은 산 속에 집을 짓고 그 집을 화실로 삼은지가 20년이 넘었다. 궁극적인 이유는 나무 곁에 살고 싶어서다. 이 외에도 화가는 삶의 많은 부분을 나무와 연결 짓는다. 그의 아호가 목우(木愚)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나무숲 속에서 잉태된 김일환의 다작은 변모를 거듭했다. 30대 청년화가의 욕망이 내재된 40년 전의 그림은 아카데미즘적인 성격이 짙다. 청년작가시절엔 누구나 잘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 한번쯤은 품어보지 않았을까. 

비평가 그린버그가 비판했던 아카데미즘은 형식의 권위를 낳았다. 누구나 준수해야 하는 규범으로 간주됐던 아카데미즘은 고정된 실체를 붙잡는데 주력했다. 미의 실체가 고정된 것이라고 본 서양의 사고방식이 근간이다. 평생 화업에 불을 지펴온 김일환의 작품 중 1983년 작인 풍경화와 인물화가 여기에 근접했다. 아카데미즘이 미에 대한 정립이라면 아방가르드는 미에 대한 반립이다. 김일환에게 미의 반립은 1983년 이후부터 일어난다. 화가 김일환은 평생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의 다양한 예술적 실험은 다작의 원천이다. 체화된 개성도 한몫을 했다. 

1986년~1989년에 그린 <탈춤>시리즈와 1989년~2009년 그림의 전통소재에서는 한국적인 미감을 녹여내려 한 흔적이 포착된다. 2010년~2012년 작인 <꽃들의 향연>시리즈와 2014년 <몽골풍경>연작에 이어 2017년 <자연유희>연작과 2018년 <아리랑을 품다> 시리즈까지, 대략 10년 주기로 그림이 바뀌었다. 다채로운 컨셉은 다음 행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이다. 그가 특정한 예술 사조나 형식의 경계에 머물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단서이다. 당말 오대의 화가 형호는「필법기」에서 화가의 등급을 신(神) 묘(妙) 기(奇) 교(巧)의 네 가지 수준으로 분류했다. 이중 김일환은 어디에 해당될까. 분명한 것은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실험을 즐겼던 김일환은 평생 수행한 화업으로 자기만의 예술을 꾸준히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마침내 당산나무가 탄생했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숙제를 극점으로 몰고 가듯 화가 김일환은 나이 70세에 텅 빈 여백을 허용한다. 넓은 여백이 수난과 시련의 담금질을 견딘 당산나무를 받쳐준다. 빠른 필력으로 망아의 상태에서 탄생한 듯한 당산나무는 잔재주를 밀어낸다. 큰 키의 당산나무는 작가가 기대는 믿음의 대상인 동시에 분신 같은 것이다. 당산나무가 우뚝 선 심상풍경에서 삶의 성숙을 기원하는 작가의 염원이 얼비친다. 한민족의 DNA에 흐르는 아련한 향수와 미감도 감돈다. 화가는 470㎝의 긴 화폭에 초록이 우거진 숲을 당산나무로 채웠다. 당집과 돌탑, 칠성당을 그려놓고 신주돌에 새겼을 민족의 한을 외면하지 않는다. 당산나무에 오색 천을 달고 소원을 빌었을 한민족의 기운이 화가의 바람이 되어 허공에 나부낀다.

지난 2018년 아양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아리랑을 품다>도 간과할 수 없다. 아리랑과 관련된 다양한 해석 중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다음과 같은 풀이가 김일환의 작품세계로 스며든다. 아리랑의 ‘아리’는 밝음과 광명을 뜻하고, 我(나 아)+理(다스릴 리)+朗(밝을 랑) 즉 ‘참 나를 깨달아 인간 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것’ 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아리랑은 한을 노래하는 것이요 한은 밝음이고 깨달음이다’라고 한 김일환의 주장과 맞닿는 부분이다. 어쩌면 화가 김일환에게 한은 어둠과 싸우는 활기찬 에너지가 아닐까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진실로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을 알지 못한다. 김일환의 아호 목우(木愚)야말로 그가 어리석지 않음을 방증하는 단서이다. 일찍이 세욕으로 들끓는 번잡한 도시를 떠나 고요한 산속에 둥지를 틀었던 것은 그가 ‘나무’를 ‘나(我)무(無)’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무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면 나(我)무(無)가 된다. 향후의 작품은 한(恨)의 메타포(metaphor)인 당산나무에서 나(我)무(無)로 지어질(作)것만 같은 예감이다. 나무의 형태나 색깔 균형과 조화에 기대지 않더라도 그의 이름 (金日煥)처럼 밝고 환한 생명력으로 기운생동할 나(我)무(無). 기대는 늘 설렘을 동반한다. 
2019. 11. 25.
미술학 박사 서 영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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