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4    업데이트: 18-11-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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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대하여
아트코리아 | 조회 253
나무에 대하여

*들어가기
나는 목우라는 호를 30년 넘게 사용하고 있다. 젊은 시절 나의 성격이 조금은 급하고 괴팍하여 사고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기에 자신을 단속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지어 불러 왔는 것 같다. 목우는 어리석은 나무다. 바보처럼 한자리에서 한생각으로 아무탈없이 그렇게 살고 싶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무를 좋아했고 나무가 있는 곳으로 숲을 찾아 산으로 들어와 산사람이 된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것 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 왔는것 같다. 그렇다,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곧 나무다. 즉 나와 무가 합친 말이다. 그러므로 식물로서의 나무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의 어원을 추적하여 태초에 나무라고 불러지게 된 이유와 그렇게 된 의미를 찾아 보고자 한다.
*들어와서

1)나에 대하여
‘나’는 사전적으로 상대에 대하여 자기를 가르키는 일인칭 대명사다. 그리고 ‘나야’’나다’라는 것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로 나가 이렇소라는 존재감을 나타내는 나이 즉 연륜을 말한다. 나와 이가 합친말이 ‘내’다. 내는 나 자신을 확인하는 강한 의미가 있다. ‘나’에는 네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 존재하는 자체의 일인칭으로서의 나, 둘째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는 이인칭으로서의 나, 셋째 사회적인 역할에서 알려져 있는 삼인칭으로서의 나, 네째 존재하는 나가 내자신을 인식하는 무인칭으로서의 나다. 그러나 첫째 존재하는 자체의 나는 육체라는 형상물이고 사후 여행을 같이 할수 없고, 둘째 상대적인 관점에서 나는 부모,형제,친구등이며 또한 사후 여행을 같이 할수 없으며, 셋째 사회적인 역활에서의 나는 재물,명예,업적으로 역시 사후 여행을 같이 할수없다. 네째 존재하는 내자신 안에 있는 나는 정신과 혼으로 태어남과 동시 사후 여행도 같이한다. 그러면 진정한 본질적인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인생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나무와 같이 오직 한몸 한 자리에 머물며 아무런 불평이나 욕심도 없이 인고하며 참아온 네번째 나 이다.

2)무에 대하여
‘무’는 무엇 이라는 의문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한자의 ‘무’자의 형태는 커다란 수풀에 불이나서 다 타 없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즉 없어진 상태에서 무엇이라는 것을 생각케하고 요구하고 있는 그것이 무다. 결국 무는 있었다가 없어졌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무는 무엇인가를 염원하는 바람이라 할수 있다.
3)나무에 대하여
그러므로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있는 그 자체가 나무다. 나와 무가 합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의 정신과 혼이 불타 없어진 수풀의 흔적과 만나는 것 이고 그래서 정신과 혼이 무엇이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요구받고 있는 것 이다. 태초에 우리 인간이 자연만물로 부터 두려움을 떨치고 나의 염원과 어떤 바람을 갖는 것이 나무다. 아니 나의 정신과 혼이 무엇을 갈구하며 기다리고 있는 형상이 곧 나무이다. 그것이 오늘날 남아있는 당산나무이고 신목이다. 선조들은 선사시대때부터 이러한 나무을 매개로하여 하늘의 신으로부터 영흠한 기를 내려받아 종족을 보호하며 이끌어 왔던 것이다. 이것이 전인류가 갖는 토템신앙이다. 이처럼 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들의 삶속에 깊이 자리하여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기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를 앞두고 오랫동안 나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왔던 느낌들을 정리하고 나무가 갖고있는 메세지와 이미지등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는 현실의 각박한 삶속에 황폐해진 우리의 정신과 혼을 세척한다는 차원에서 토템적인 시원문화를 되짚어 보고싶었다. 그리고 바쁜 일상으로 타성에 젖어 왔던 시각을 비틀어 다른 각을 통해 봄으로 우리 자신들 속에 숨어있는 영적인 감성을 감지하여 꺼집어 내고 싶었다. 그래서 신이 강림하는 나무에서 나의 영적인 감성과 더불어 함께 춤추며 즐기는 또 다른 자연유희로 나무와 노닐며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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