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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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2    업데이트: 17-01-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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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처럼 부풀었던 자유 - 대구문인협회 중국 문학 기행을 다녀와서-
황영숙 | 조회 1,584

풍선처럼 부풀었던 자유  -대구문인협회 중국 문학 기행을 다녀와서-

 

황영숙

 

 

어릴 적 나는 유난히 풍선을 좋아했다.

겁이 많아서 한 번도 풍선을 불어 보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불어주는 풍선은 너무나 신기하고 설레이는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손에 쥔 풍선을 놓쳐 날아가 버렸다. 하늘을 뭉실뭉실 올라가 까맣게 사라지는 풍선을 바라보는것은 가지고 노는것보다 휠씬 더 눈부신 아름다움이었다. 철이 들면서 나는 오랫동안 풍선놀이를 즐겼다. 붙잡혀 있는것 보다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 보는것, 그것은 얼마나 황홀한 비상인가

나는 언제나 하늘을 배경삼아 떠도는 어릴적 풍선처럼 지금 누구도 못말리는 여행 매니아가 되어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여행의 첫도착지는 북경이었다. 올림픽이 열렸던 도시답게 예전과는 달리 깨끗하면서도 휘황찬란 하였다. 기내식이 있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던 우리는 제법 입에 맞는 음식으로 식사를하고 북경서커스를 관람하며 여행 첫날의 첫밤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맞이 하였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만리장성을 가다.

 

만리장성이란 길이가 만리가 되는것이 아니라 길고 긴 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이번에 만리장성을 오르면 3번을 올라가는 필자는 장성에 오르는 것을 쉽게 포기했다.

인류최대의 토목공사라 일컫는 장성을 앉아서 감상하기로 하고 장성이 가장 잘 보이는

길가 찻집에 앉았다. 만리장성은 북방민족을 막기위해 BC208년 제나라때 처음 착공된 후 진시황제때까지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총길이 6352K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다. 이 엄청난 장성을 쌓기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을 어찌 오늘날 우리가 거론할수 있겠는가.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아닌 속담이 있다. 그 뜻은 짧은 하룻밤이지만 오랜 인연을 맺을 수 있음을 뜻하는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하룻밤의 만리장성에 얽힌 설화는 너무나 눈물겹다.

며칠만 있으면 장성을 쌓으러 가야되는 남편을 둔 아내가 있었다. 한번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곳에 남편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눈물로 살아가던 아내는 장성을 쌓으러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남편을 구하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였으나 그것이 낯선남자와의 하룻밤 잠자리였다.

그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면 그 남자가 남편대신 만리장성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남편을 구해낸 지어미의 애절한 이야기는 만리장성에 얽힌 설화중에 가장 가슴아픈 이야기일 것이다. 버스를 타고 다음 여행지를 향하는 길목에서도 장성은 오래오래 우리를 따라오며 길고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자꾸 이야기하는것 같았다.

 

  *내 몽고, 그 푸르른날의 자유

 

만리장성을 떠난 우리는 3시간을 달려 내 몽고에 도착했다. 버스가 보이자 멀리서 기마대들이 형형색색의 깃발을 날리며 먼나라에서 온 이방인들을 마중 나왔다. 신기한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설레었다. 말을 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군들처럼 장엄해 보였다. 그들의 환영식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오랜 버스여행의 고단함도 잊고 드넓은 초원에 가슴이 후련했다. 언제나 높은 빌딩의 숲속에 살다 간 우리였기에 초원은 우리가 꿈꾸던 오아시스 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여도 행복한 초원의 품이었다. 몽고 전통놀이에 잠시 취해서 놀다가도 우리는 오늘밤에 펼쳐질 초원의 밤하늘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내 몽고에 하나뿐인 호텔에서의 저녁식사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들의 저녁식탁에는 초원에서 자란 양이 빨간 리본을 맨체 곱게 차려입은 소녀들과 같이 나타났다. 맛있는 저녁식사의 희생양이 된 어린양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거행되고 우리는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양에게 감사하다는 축배를 들며 서서히 초원의 어둠속에서 취해 갔다. 호텔에 있는 모든 술이 바닥이 나고서야 우리는 호텔 밖으로 나와 캄캄한 초원의 밤하늘을 보았다. 불행이도 우리가 그리던 은하수나 주먹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초원이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며 캄캄한 어둠속에서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웠다. 취한 사람은 취한사람대로 못취한 사람은 못취한 사람대로 한데 어울려 행복한 초원의 밤을 맘껏 즐겼다.

이튿날은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기도 하고 전통민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전통음식인

나이또푸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몽골 초원에서의 삶은 너무나 단순한 것들만 갖춰도 행복할 것 같았다. 즐겁고 행복했던 초원을 떠나오면서 뭔가 소중한 것을 버리고 오는듯한 아쉬움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다.

   

* 베이징, 그 천년의 왕성

 

언제나 그랬듯이 천안문 광장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 넓이를 가늠할수 없는 광장에는 세계 각국의,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광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천안문은 황성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승천문으로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1976년의 대정부 항거운동이나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사태를 지켜본 천안문은 급변하는 중국 현대사의 상징으로 묵묵히 남아있었다. 천안문을 거쳐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길도 여전히 사람으로 가득했으며 입구 매표소에서 바라보는 성의 거대함도 기가 막혔다.

성의 지붕은 거의 황색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원래 자금성은 북극성이 머무는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북극성은 곧 황제를 의미하는 뜻으로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으로 지붕을 올렸다고한다. 북쪽으로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은 자금성의 중요한 의식장으로 사용하였으며 그밖에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궁정도 너무 많아 그 당시 중국 황실의 화려함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왕궁과 왕성을 뚫고 오만방자한 중국의 황제와 대신들을 향해 외교활동을 펼쳤던 우리의 사신들에게 새삼 고개를 숙이며 3박 4일 동안의 아쉬운 문학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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