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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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옷깃 여미지 않고 이 詩를 읽을 수 있겠는가" 2011.11.12 매일신문
황영숙 | 조회 1,034

"누가 옷깃 여미지 않고 이 詩를 읽을 수 있겠는가"

은사시 나무 숲으로/황영숙 지음/ 한국문연 펴냄



하이힐의 뒷굽이 닳아져/ 지하상가의 구두병원에서/ 새것으로 갈았다/ 자칭 구두병원의/ 원장이라는 아저씨는/ 한쪽은 아직 쓸 만한데 한쪽만/ 닳은 게 이상하다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새삼 나의 걸음걸이에/ 신경이 쓰였다/(중략) 집으로 돌아온 나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걷기 연습을 했다/(하략)’ -똑바로 걷기- 중에서.

강희근 경상대 명예교수는 ‘황영숙 시인의 시는 명징한 이미지, 보편적인 정서로 일관한다. 어쩌면 서정시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발상이 착지하는 데가 체험이고, 상상이 궤적을 그어나가는 데가 격에 맞는 사물이라는 점이 이를 실증해준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어디에 가도 환영받을 것이고, 시를 읽고 싶은 그 누구에게 가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 작품집에서도 시인은 체험을 소재로 삶을 성찰하는 작품을 많이 쓰고 있다. 불사른 청춘을 뒤로하고 이제는 용서의 길로 들어서는 등 굽은 여인 또한 이와 통한다.

‘돌아가는 길이 쓸쓸하였던가/ 힘없이 무너지는구나/ 떨어질 길 위에 서 있어도/ 두려움 없던 청춘/ 뜨거운 숯불에 온몸을/ 씻었던 기억 하나로/ 세상을 용서하고 돌아가는 길/ 타박타박 등굽은 여인 하나도/ 같이 따라간다.’ -하현달- 전문.

 

 

하현달과 등 굽은 여인은 별개가 아닐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몸을 씻었기에 용서도 가능할 것이다. 강희근 교수는 이를 두고 “황영숙 시인은 감정을 드러내되 그것이 중심을 잃거나 편벽의 자탄에 빠져들지 않도록 시적인 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같은 시적 격은 아마도 시인의 삶의 격에서 기인할 것이다.

‘돼지 웃다’는 황영숙의 인생관을 잘 보여준다.

‘웃는 구나/ 몇 푼의 지폐를 입에 물고도/ 저리 빙긋이 웃을 수 있나니/ 거추장스런 몸뚱이는 미련 없이 버리고/ 접시를 방석 삼아 호사스레 웃으며/ 절을 받는다/ 한평생 배고팠던 짐승이여/ 오늘 배부른 인간이 배고팠던 너에게 절을 하나니/ 세상의 온갖 찌꺼기도 마다 않고 달게 먹은/ 너의 눈물겹던 일생이 하늘에 닿아/ 부끄러운 인간들의 하찮은 소원쯤은 걱정 없는/ 웃음으로 넘기나니(하략).’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은 인생의 기록 혹은 성찰처럼 보인다. 소박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안에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담겼으니 결코 소박하지만은 않다. 강희근 시인은 “누군들 옷깃 여미지 않고 읽어낼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125쪽, 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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