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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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86    업데이트: 16-11-17 11:20

작품방

국밥
황영숙 | 조회 915

국밥

 

저물어 오는 시골장은

해가 떨어지자마자 썰렁했다

 

버림받은 이방인처럼

허름한 장터 국박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아버지는

손바닥만한 고향읍에 오일장이 서면

자주 나에게 국밥을 사 주셨지

 

국밥을 앞에 놓고

정신없이 먹고 있는 나에게

"남기지 말고 다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크지."

어린 나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올려 주시며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

 

이젠 낯설어서

쓸쓸한 정처로 떠돌다

돌아가야 하는 고향 장터

 

울컥울컥 가슴을 떠밀며

올라오는 국밥덩어리를 삼키지 못하는

나를

아버지는 다시 달랜다

"남기지 말고 어서 먹어라.

그리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오랜 이별인데도

사랑은 너무 길다.

흙, 너에게로 가는 길

 

작은 것도 큰 것도 높은 것도 낮은 것도

너희는 모른다

안하면 오직 하나 우리들이

있을 뿐이다

아직도 너무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는

너희의 사랑

작은 몸들을 서로 비비며

흔들리는 모든 것을 일으켜 세우는 소리

스스로 몸을 열어

세상을 껴안을 때마다

맑은 그림자로 우리 죄를 지우는

말없는 순교

보이지 않는 너희의 손길은

죄를 세우는 이승의 모든

생명을 쓰다듬는다

 

아직도 너에게로 가지 못하는

고독한 나의 사랑

 

끝없이 위태한 세상 속에서

서성이는 나의 긴 그림자

쓸쓸한 연명(延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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