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하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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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찾아서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하청호 시인 / 채널경북 / 2016.03.18
아트코리아 | 조회 2,248
출향인을 찾아서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하청호 시인
“교육자로서 올곧게 살아올 수 있었던 원천은 문학”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하청호 시인(73)은 1943년 경북 영천 출생 출향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팔

공산 동북쪽 끝자락 영천시 신녕면 매양리 출신이다. 한국문인들의 총결집단체 부이시장으로서 문학전반에 관한 협의를 비롯 문인양성이나 20여개에 달하는 각종 문학상 심사 관련 사항 등 월 3회 이상 서울출장길에 나서는 바쁜 가운데서도 여전히 작품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는 현역작가다. 한국문인협회 대구지회도 자주 찾아가 국내 문학계 전반에 관한 동정도 알려주고 건의사항도 들어주는 한편 각종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


하청호 시인은 문인이면서 교육자다. 1963년 대구사범학교(현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상주 남부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006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43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끝내고 정년퇴임했다. 많은 작품들이 교과서에 수록됐으며 서울과 대구에 시비도 세워졌다. 


각박한 세상에 위안주고파


 

“문학과 교직은 내 인생의 균형을 잡아준 두 날개였다. 정년퇴임한 후에는 애오라지 문학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시인은 퇴임후에도 여러 편의 시집을 내는 등 창작열을 더욱 불태우는 한편 학생들과 일반인 대상 문학관련 강연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문학과 교직의 길을 동시에 걸어온 하 시인은 격변기를 살아오면서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올곧게 살아올 수 있었던 원천은 문학이었다고 한다.

“문학은 내 정신적인 영역도 넓히고 문학을 통해서 삶이 더 가치롭고 풍요롭게 됐다. 많은 이들이 공감해 줌으로써 삶의 의미를 더 가치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문학을 통해 용기갖게 하는 것을 희구하면서 글을 쓴다는 하 시인은 자신의 글을 통해 위안을 받았다는 반응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정서순화를 위한 시에다 곡을 붙여 보급하는 한국동요작사작곡가협회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하 시인은 대구시 독서의 노래, 수성구청의 노래, 대구 북구 구민의 노래 등 60여개 작품이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그중 ‘무릎학교’는 EBS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노래방에서도 접할 수 있다.
영천출신 문학계의 큰별 하근찬 선생으로부터 서신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등단하기 전인 60년대에 ‘새 교실’이라는 교육잡지에 실린 자신의 글을 보고 보내온 편지였다고.


고향이란 문학할 수 있는 원동력
부친이 돌아가시던 1973년까지 성내동에서 부모님이 살으셨고 그 이후 모친이 돌아가시던 1993년까지 야사동에 살았을 정도로 영천과는 항상 인연을 맺어왔다는 하청호 시인. 공직자였던 부친을 따라 부산으로, 대구로 이사다녔지만 고향그리는 마음은 늘 한결같았다는 하 시인에게서 고향 영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시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영천장날에는 전통시장을 찾아 묘목도 구입하고, 국밥도 사먹는다는 하 시인은 영천문화원에서 청소년 대상 문학강의도 오래 맡았을 뿐아니라 얼마전에는 고경에서 시화전도 가졌다. 지금도 영천문학 고문이면서 영천지역 작가와 출향작가 20여명으로 3년전에 결성된 ‘서세루 문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자택이 있는 대구 동구 봉무동 이시아폴리스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청호 시인은 70대로 보이지 않는 동안이었다. ‘고향’이라는 시심을 안고 사는 시인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나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어머니 품속같은 곳이다. 어린 날 신화가 숨쉬는 내 고향 매양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신녕천 맑은물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시심의 바탕이 된다”는 시인은 “비록 네 살때 고향을 떠났지만 초·중·고교 시절 방학때면 큰집을 찾아가 사촌형제들과 함께 팔공산과 치산계곡, 동구밖 숲길과 신녕천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기억들은 여태껏 문학할 수 있는 힘과 원동력”이란다.

자연은 살아있는 책이요, 나의 서재다. 고향의 자연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워왔다. 나에게는 문학의 무궁한 보고와 같은 곳이 바로 고향이다”는 것.
 


고향가까이에 글방 마련
퇴임후 글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고향에서 서쪽으로 공산폭포가 있는 치산을 지나면 20여분 거리에 있는 군위군 부계면 현창마을에 조그만 흙집을 지어 살고 있다. 팔공산 북쪽 사면의 이곳은 하 시인의 고향과 외가(군위군 의흥면 배엘마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652.89㎡(500평) 밭에 부인과 함께 각종 나무와 꽃, 채소도 가꾸고 있다. “현창마을에 삶의 터를 잡은 것은 고향과 외가의 흙과 바람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서”란다.

본가 앞마당에 반쯤 헐린 담배 굴을 수리해 글쓰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영천시도 문화적인 마인드 필요
“영천시가 새로운 기업유치로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일은 잘하는 일이지만 문화예술방면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시인은 문화적 마인드가 여타 시·군에 비해 격차가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하는 고령군은 물론 군위·상주·안동과도 비교된다. 영주시도 문학행사가 굉장히 활발하다. 문화예술방면의 지역인사들은 물론 출향인사들과도 긴밀한 소통으로 영천시 차원에서 백신애 축제 같은 행사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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