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과일가게 앞 채소 파는 할머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느다란 가을비 좌판 적신다
참을만큼 참았는지 하늘 한 번 보고는
굽은 허리로 말없이 주섬주섬 전 거두고
늙은 손놀림 어둔한지 자꾸 헛손질이다
허리 한 번 펴고는 돈 쌈지 만져보고
오고가는 사람에게 멋쩍은 웃음도 보낸다
등이 굽어서 손끝 야무지신 엄마 생각났다
빨간 고추 공드려 말리다 갑작스런 비에
종종걸음으로 광주리에 담고 멍석 두르르 말며
'왜 하필이면 이때 비 오노
일 안하고 잠자는 밤에 오면 어떤노'
아마 할머니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 같다
빗줄기가 굵은 주름살 파고들 때
허둥대는 손놀림에 툭,떨어지는 무 하나
빗물에 반질르르 윤나게 씻겨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