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9    업데이트: 22-01-11 10:19

언론&평론

새벽을 여는 기氣의 신적身迹 - 서영옥
관리자 | 조회 423
새벽을 여는 기氣의 신적身迹

 ● 작가와 작품은 닮게 마련이다. 작품은 작가의 혼이 담긴 물적物的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작가 금경의 회화가 그렇다. 그의 회화는 기氣가 창작의 주요 원천이다. 선이 서로 마주치다 틀어지고 정지하는 듯 다시 솟구친다. 온몸에서 잉태된 힘찬 필선은 작가가 토해낸 기의 신적身迹이다. 약동하는 선은 캔버스 위에서 주로 흑과 백을 변주한다. 조형요소로서의 선이라기보다 응집된 기운이며 기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동양에서 기의 본체는 형태가 없는 태허太虛라고 한다. 우주의 근원이며 허공은 생성 변화 창조하는 기로 가득하다. 유有만을 실체로 삼는 서구적 관념과는 대조적이다. 금경의 작품에서 포착되는 기는 동양사상과 가까우며 작가의 인생관과 자연관, 예술관, 정념, 직관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다고 할 수 있다.

● 필자는 98년부터 작가 금경과 예술적 유대감을 형성해왔다. 함께 과거를 더듬어 현재를 논하고 미래를 토로한 시간이 고르고 두텁다. 2011년 이후 이번 신작전에 대한 탐색은 작가 금경의 삶과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를 재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종종 그의 둔중한 사유는 뜨거웠고 예술에 대한 고민은 깊었다. 소가 풀을 먹고 우유를 생성하듯 금경은 자신의 인생사를 정제된 기로 토해낸다. 붓이 그의 손에 닿으면 힘찬 필선으로 태동했다.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 는 하나로 응집된 선을 남겼다. 내면의 기운은 필선을 통해 피상을 넘었고 그것은 에토스ethos 보다는 파토스pathos에 가깝다. 이러한 그의 회화는 일종의 언어이며 원풍경原風景의 기록이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삶과 마주한 생기소멸의 행간을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에 예속된 유한한 존재가 예술로 삶을 치환해 가는 노력으로 봐도 좋다. 작가는 그 흔적을 기화氣畵라고 한다.

금경_氣畵기화-새벽을 열다展_동아대학교 석당미술관_2016

금경의 기화는 풍경화와 정물화 그리고 인체묘사로부터 출발한다. 간간이 취미로 하던 꽃꽂이도 언급되는데, 거쳐 온 일련의 과정에 대한 반추는 현재를 가늠하는 단서로써 중요하다. 정리하면 꽃꽂이 → 유화·연필드로잉 → 기화(일필휘지一筆揮之) → 기화(Dripping, installation) → 기화(복합매체)로의 이행이다. 누드를 주 모티브로 하던 96년 이전부터 그의 시·공간적 탐색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셈인데, 당시 작가의 의식 바탕에는 기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차츰 와해된 인체는 자연이라는 사실적인 요소로부터 인간의 정신적인 요소로 옮겨왔다. 뚜렷한 형상形象을 묘사하던 사생寫生의 선이 형사形思의 선으로 바뀌며 기화로 전환된 것이다. 우주의 근원인 기가 예술의 본질이라 믿으며 '화畵'의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간 것이다. 금경의 이러한 전환은 자칫 불명료한 화의 단면이 될 수도 있는 기화를 박사학위논문으로 정리함으로써 독자적인 예술신념을 탄탄히 다졌다. ● 작가에게 작업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생활life cycle이다. 시종일 작품의 온갖 기쁨과 번뇌 속에 작가가 들어간다. 때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혁명가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현실에 풍덩 뛰어들지 못하는 모습일 때도 있다. 그러나 작업만큼은 고유한 시각과 기질로 다른 것들과 차별화된 것을 창조하려한다. 때문에 혁명가처럼 비춰지는 것이다. ●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이러한 고독은 적절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금경) 작가 금경은 종종 세상과의 고립을 자처하며 소신껏 자기혁명을 도모한다. 모방이나 차용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며 매번 새로움을 추구한다. 무가치한 것을 솎아내고 가치 있는 것의 진수를 투영하려한다. 기를 모아 엣센스essence 남기기에 집중하는 것이 작가 금경에게 반복되는 예술적 자기혁명이다. 곧 금경의 기화는 절대고독 속에서 뿜어낸 내용의 집약이자 형식의 정수다. 하여 이미 존재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하여도 금경의 작업에서는 잠시 미뤄둬야 할 것 같다. 모든 텍스트는 존재했던 것들을 재결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하여도 그의 작업 방식에는 적합지 않은 비유이다.

금경_氣畵기화-새벽을 열다展_동아대학교 석당미술관_2016

이러한 그의 작업을 순간충동이나 단순한 유희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자유로운 듯 절도 있고 절제된 긴장감에는 철학적 사유와 화론이 토대 되었다. 그가 박사논문에서 참고한 사상과 화론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과 성리학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理와 기氣의 원리를 통해 자연 ·인간 ·사회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한 성리학적 이론체계), 사혁謝赫(남북조시대)의 화육법畫六法과 석도화론石濤畵論(石濤 ·1642~1707) 등이 그것이다. 객관적인 대상을 떠나 주관적인 순수성을 추구한 추상미술Abstract Art도 배제할 순 없다. 일련의 이론적인 배경은 금경이 기화를 일구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배경은 현재의 가교일 뿐 작업의 전부가 될 순 없다. 작가는 일찌기 미술이념이나 체제를 배제한 자기표현에 집중해왔다. 대상화되지 않은 기화를 추구하는 작가에게는 기존의 패러다임이나 방법론이 무의미하다. 반드시 학문적인 토대나 철학적인 사유를 요구하지 않는 예술이기도 하다. 다만 금경이 추구하는 기화는 형상성을 피한 순간적인 감흥과 직관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화론이나 기존의 철학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연적인 역동성엔 기가, 단호한 개성에서는 화가 포착되면서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기화다.


금경의 기화가 화론이나 철학에 온전히 편승하지는 않지만 기반을 두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기氣를 에너지energy로 표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의 여백은 서양화의 채워진 면(예컨대 밀레의 「만종」에서처럼 석양의 칠해진 면)과는 달리 공空과 허虛와 무無의 여백이다. 허무虛無의 공간이 아닌 태허사상太虛思想의 순환적인 공간개념이다. 한편 선은 일필휘지의 붓글씨처럼 일획을 구사하지만 시·서·화時·書·畵일치를 요점으로 하는 문인화의 경지를 추구하진 않는다. 비우고 부수거나 덮어버리는 자동기술법Automatisme적인 측면은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과도 멀지않다. 곧 동·서양화법의 접점이다. 때문에 금경의 기화에서 '화畵'를 Painting으로 표기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기氣를 '어네지energy' 화畵를 '페인팅Painting'으로 한정할 수 없는 것은 한민족 특유의 흥興이나 한恨을 하나의 단어로 집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금경의 화화에서 우리가 마주할 것은 우주의 본질인 기를 화로 시각화 한 것이라면 무리일까? ● 2016년 4월 18일 석당 미술관에서 보여줄 금경의 신작들은 전작의 연장선상이다. 이전 작업이 그랬듯이 기교적이지 않다. 시장성을 겨냥한 아부성 주제도 버렸다.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교훈적이지도 않으며 위업을 강조하기 위한 역사화나 지나치게 미화된 몽상화는 더욱 아니다. 과학이나 수학처럼 완벽한 논리를 요구하지 않으며 단일한 사물에 빗대지도 않는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반영된 그의 작업은 실효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여 작가의 기억이나 경험상의 목록들을 상세하게 열거할 순 없다. 다만 그의 직관을 통해 드러난 불명료한 기가 가변적인 화로 드러났기에 우리는 그의 명료한 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어 의식 저변에 깔린 민족의 생리적인 미의식도 간과 할 수 없다. 소슬한 마음을 평정시킨 신앙(무속신앙)과 가슴에 맺힌 한과 교화적敎化的인 예절, 관혼상제로부터 체득된 정서와 습관 등이 그렇다. 이것은 민족의 토양에서 배양된 한국인 특유의 미의식이면서 오롯이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윤리적이고 청결하며 단정한 유교적 여성성에 대한 통찰도 그 일면을 차지한다.


일획으로 가능한 그의 작업방식은 시종일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주장처럼 영혼과 육체를 둘로 나누지 않는 작업이다. 우주의 근본을 회화의 근본으로 연결 지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충일한 생명력을 지닌 선의 응집과 확산으로밖에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300호 캔버스에서부터 1호 세라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화면에서 일맥상통하는 기운이 포착된다. 작업장을 가득 채운 작업량과 수차례의 개인전 및 단체전에 참가한 경력도 그간의 노고와 역량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이다. 이번 신작전 『새벽을 열다』도 그 열정의 연장선이다. 불굴의 예술혼을 불사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가 『새벽을 열다』라는 제목을 단 이유일 것이다. 삶은 촌각이 늘 새롭다. 작가 금경에게는 붓을 잡는 그 순간이 새로운 여명이 차오르는 새벽일 것이다. 그의 마음과 붓과 캔버스가 일구어내는 기의 신적이 새벽의 기운처럼 천지사방으로 번져가길 바란다. (2015년 4월) ■ 서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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