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9    업데이트: 22-01-11 10:19

언론&평론

프롤로그(prologue) -금경- 미적대상인 내적표현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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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prologue)
-금경-

미적대상인 내적표현의 뿌리


동양에 위치한 한국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렸고, 내륙지방인 충청지역은 온화하고 예의바른 양반의 도시라 불렸다. 양반의 도시인만큼 그곳에서 생활하는 아낙들은 참을성이 강하고 겸손하며 자기희생이 강하다. 그러한 참을성과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참고 살아온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이 그들이다. 참기 힘들 땐 풀어내어야 하는 데, 풀어낼 수 없을 때 화가 생기고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한(恨)이 되기도 한다. 내가 작업하는 도중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방출되는 날카로운 획이며, 역동적인 선, 강렬한 색, 모든 미적대상인 내적표현의 의미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나의 작업에서 무의식적으로 끌어내어 표현하려고 했던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잠재된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의 뿌리를 찾기 위해 최근 개인전을 열면서 더욱 신중했다. 너저분한 작업실에 쭈그리고 앉아 멍 때릴 때, 또는 개인발표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그녀와 관계된 삶을 조심스럽게 파고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어머니의 삶, 참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약자의 억압적 삶, 억눌린 상태로 살면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 우울, 불안 등을 일명 한(恨)이라고 나는 부를 것이다.
 
시대적 배경과 제도적 측면

한(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제도적 측면을 일부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유교적 관념이 사회에 뿌리내리면서라 볼 수 있다. 우선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남편이 죽어도 재가할 수 없다거나, 여자는 벼슬을 할 수 없다거나, 여자는 서당에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을 보면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불리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삼종지도(三從之道)와 같이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하면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거나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하여 여자가 결혼하면 친정식구가 아니며, 그러므로 시가(媤家)에서 일어나는 일에 친정에서 관여할 수가 없었다. 물론 여자는 재산 상속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칠거지악(七去之惡)과 같은 항목은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악습으로 이를테면 시부모(媤父母)에게 순종(順從)하지 않는 것, 자식을 낳지 못 하는 것, 음탕(淫蕩)한 것, 질투하는 것, 나쁜 질병이 있는 것, 수다스러운 것, 도둑질하는 것,’등이다. 또한 관습적 측면에서 보면 ‘여자는 함부로 외출하면 안 된다. 부득이한 경우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외출을 하였다. 여자는 큰소리로 말하면 안 된다.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는 집안의 큰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을 ‘불구인 남성’으로 취급한 것보다 더 심해 보인다. 이와 같은 제도는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고 사회윤리를 확립하자는데 그 의의가 있지만 결국은 이것이 여성의 근본적인 행동을 제약하고 구속하여 여권(女權)을 박탈하자는데 그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전제한다 하더라도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에 대한 내용을 현대인들이 수용하기에는 쉽지 않다. 21세기 현재에는 그 당시의 한(恨)에 대한 마음병 즉 울화병이 사라지고 스트레스로 일괄해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시간과 공간의 이원성

다음으로 영혼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혼에 관한 내용과 영혼의 생명유무를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르미데스』에는, 소크라테스가 영혼(靈魂)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영혼(靈魂)은 한 인간의 육체적 건강과 질병 모두의 기원”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영혼(靈魂)이 곧 그 인간이며, 하나의 인격체라고 보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원성의 수준을 초월해 진화할 것이다. 이원성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당신이 육신을 떠나 영(靈)적인 세계로 되돌아갈 때 당신은 이원성 안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지녔던 분노와 슬픔 그리고 두려운 감정은 증발할 것이다. 육신을 떠날 때 당신은 그 당시의 주파수에 맞는 영(靈)적 세계에 합류하게 된다. 말하자면 육체적인 문제는 영(靈)적인 문제가 저주파로 가장 뚜렷하게 투사된 것이기 때문에 영(靈)적인 문제로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혼(靈魂)을 치료한다는 개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마음·정신·영혼의 치유는 근본적인 치유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토속적인 무속인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 엄마를 비롯한 여성의 恨(한)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한 여성의 한(恨)은 굿을 통해 덜어보려 애썼던 것이 아니었는가를 생각한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무속인을 통해 음식을 차리고 마음에 응어리져 화로 남아있는 한(恨)을 풀어내는 굿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恨)을 풀어내는 무속인들은 어린 시절 연구자의 집 앞마당에 시루떡과 돼지머리 등 갖은 음식을 한 상 차려 놓고, 그곳에서 무당들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는 가운데, 오색찬란한 한지를 마당을 비롯해 집 전체에 늘어뜨려 꾸며놓고 정신없이 꽹과리와 징을 쳐댈 때면, 내 어린가슴이 쿵쾅거림과 무서움을 지울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주문을 밤이 새도록 중얼거리고, 양손에 칼을 들고 정신없이 미쳐 날뛴 후 어머니의 가슴에 무서운 칼을 들이대던 그들을 보며, 얼마나 두려웠는지 그러한 기억은 연구자의 가슴속 깊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당시 어머니는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픔, 그러한 한(恨)의 일종인 화병의 증상은, 외상이 아닌 정신적인 안정의 문제이기에 무속인의 도움을 받아야 낫는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무당들은 그들만의 특유의 신화 같은 무가를 부르며 굿을 함으로써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을 것이다.
현재도 우리의 이웃에서 무속행위는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속인을 공공연히 무시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작품의 실험과정 중 알게 되었지만,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연구자에겐 중요한 발견이었고 연구할 가치가 충분했다. ‘무교·무속신앙·무당’의
행위가 천시되었던 터라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려는 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한(恨)은 의술로 치유하지 못하였기에 토속적인 방법인 굿으로 치유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의 굿은 한국 여인을 대표하는 한(恨)에서 비롯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여러 번의 굿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긴 굿의 두려움은 어머니의 주검으로 이어졌고, 곧 화장터로 옮겨 불길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나에게 집안어른들은 ‘엄마’를 세 번 부르라고 했다. 그것은 육체는 소멸되지만 영혼은 불길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미란다. 나는 엄마를 세 번 크게 불렀고, 영혼은 그가 생전에 기억할 수 있는 또는 기억하기 싫은 모든 것들을 잊고, 편안한 곳으로 가시도록 기원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육체라는 물질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영혼은 살아계실 때 보여 주셨던 인내한 참사랑과 한(恨)을 인내로 승화시킨 어머니의 아름다운 영혼은 우리 가족들과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영원히 추억될 것이다.
한 개인의 영혼은 그것이 불멸하는 본성의 회복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르페우스교도가 정화의 의식을 통해 그의 개인적 영혼을 구원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죽은 뒤에도 영혼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 영혼이 현세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참된 인격체로서 영혼

한국적인 한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의 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한국예술의 전통적 뿌리일 것이라는 의구심도 간과할 수 없다. 나의 삶 또한 늘 어눌하고 억압에서 비롯되었고, 그러한 억눌림 속에서 작가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트라우마로 남은 자리는 결국 연구자가 기댈 언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트라우마를 겪고 많은 시간이 흐른 이후 전시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퍼포먼스를 평면과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다. 최근 전시 오픈에
이루어진 퍼포먼스 과정에서 영혼을 불러들이는 행위를 직접 했으며, 작고작가의 영혼들과 함께한 작업이라고 생각했기에, 퍼포먼스 과정 중 드러났던 환희와 액티브한 열정이 무아의 상태에서 쏟아졌다. 그것은 거의 무당이 굿을 할 때 절정의 순간과 유사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위의 퍼포먼스 행위에서 보이지 않는 힘, 즉 영혼(靈魂)들을 불러 함께 한 작업이라고 나는 말미에 정중히 인사를 했다. 여기서 영혼(靈魂)을 부른다는 행위는 무아(無我)상태에서 이루어 졌기 때문에 역동적인 에너지 즉 氣(기)는 더욱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혼(靈魂)은 정화를 통해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계속적으로 윤회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에게 영혼과 육체는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로 구분되는 것들이며, 동시에 영혼은 참된 인격체(person)로서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어떤 것이다. 그는 사람이 죽은 이후에도 영혼은 살아남으며, 동시에 살아 있을 때의 인격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그 이면에 전제하고 있다. 이것이 곧 인간이 죽게 되면 당하게 되는 운명이란다. 일단 목숨이 흰 뼈를 떠나게 되면 근육은 더 이상 살과 뼈를 결합하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이 그것들을 모두 없애버리지만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되는 것이란다. 이렇듯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존속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였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영혼은 한 사람이 죽으면 연기처럼 사람의 신체 밖으로 빠져나와 마치 유령처럼 지하 세계를 떠도는 존재로 이해된다. 이렇듯 호메로스에게 영혼은 사람이나 동물이 죽을 때 그의 육신에게서 빠져나가는 숨(pneuma)을 뜻하거나, 오직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가리킬 때만 쓰였다. 호메로스적 인간은 목숨이 붙어 있을 때가 아니라, 죽음(혹은 정신을 잃은 기절상태)을 맞게 되는 시점에 비로소 육체와 영혼으로 갈라선다." 오디세이아의 한 구절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영혼의 힘의 작용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또는 이해 할 수 없는 상태의 영역임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내가 어린 시절 생활했던 충청지역은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내륙지역으로, 잔잔한 들판과 졸졸졸 흐르는 내천은 힘든 삶을 참고 인내하는 아낙들의 빨래터, 때를 빼기 위해 빨래 방망이로 힘껏 두드리며 빨래를 했다. 가슴에 맺힌 한을 빨래를 두드리며 풀어냈을 것이다. 그러한 내천은 겨울이면 얼음이 꽁꽁 얼어 아이들의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집집마다 오빠, 남동생들이 직접 나무판과 철사를 구겨서 만든 앉은뱅이 스케이트와 못을 뒤로 박아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하루해를 보내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또한 문화·예술적 환경은 충청지역의 무속 즉 굿이라 할 수 있다. 그때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굿에 의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때가 아마도 초등학교 취학 전 후일 것이다. 그때를 기억하면 현재의 작업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트라우마Trauma의 흔적임에 틀림없으며 내면에 잠재되어 작업의 뿌리로서 불쑥 불쑥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화(氣畵)와 한국의 한(恨)문화 상관성 연구」 논문 중에서
2020년 5월 금 경


1)김경(금경):대구대학교 박사. 예술가

2)나병·간질 등의 유전병,「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광규, 『한국가족의 사적연구』,일지사,1977, 김두헌,『한국가족제도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1969 

3)장영란(張英蘭)「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 『인문학연구』 4집,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인문과학연구소,2002년,1쪽“생물학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나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

4)윤태후,「조선시대 회덕향교의 효교육에 관한연구」, 성산효대학원대학교,박사논문,2016,pp194-195참조  

5)손영일, 「프라톤 중기 대화편 영혼의 개념」,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p14

6)박일영, 『한국 무교의 이해』 분도출판사, 1999, p22-26참조: 한국의 샤머니즘을 가리키는 용어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속(巫俗)’, ‘무교(巫敎)’, ‘무이즘(muism)'등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무속이라는 용어다. 그러나 오늘날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 용어의 일반적인 사용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연구자가 조홍윤과 유동식인데 이들은 역사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무교의 복권을 시도한다. 하지만 유동식은 무속이 단순한 민속이아니라 하나의 엄연한 종교임을 강조하기 위해 무교라는 용어를 1975년부터 사용하였고, 조홍윤은 무속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고 하여 실제 ’무속인‘들이 무속을 간단히 무라고 부르는 현장 종사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무(巫)라 하였다.

7)금경 개인전(본명:김경)-1998년12월,1회(송하갤러리)부산. 2000년5월, 2회(마린갤러리)부산. 2001년12월,3회(극재미술관)대구. 2003년5월,4회(성산아트홀)창원. 2006년1월,5회(2․ 3시청 전시실)부산. 2008년2월,6회(수영문화 전시실)부산. 2011년11월,7회(몽마르트르)부산. 2011년12월,9회(공 아트 스페이스)서울,2013년제10회(피카소갤러리)부산,2016년4월11회(동아대 석당미술관1관,2관)부산. 2017년5월,12회(대산미술관1,2전시실)창원. 2017년10,12회(갤러리시몬,긴자)동경. 2018년5월,13회(복합문화예술공간,머지)부산. 2020년 5월,14회(금정문화회관 대. 소 전시실)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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