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9    업데이트: 22-01-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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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와 추상 표현적 형상화_이경모/미술평론가(예술학박사)
관리자 | 조회 591
금경

기(氣)와 추상 표현적 형상화

만물의 근원인 기(氣)는 생명력의 시원인 동시에 정신의 근간으로서 동서고금의 예술정신을 추동하는 동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후기 철학자 최한기(崔漢綺)는 “우주를 가득 채운 기(氣)의 성격(性)은 본래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것으로 우주 안에 가득차서 털끝만큼의 빈틈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가 모든 천체(天體)를 운행케 하여 만물을 창조하는 무궁함을 드러내지만 그 맑고 투명한 형질을 보지 못하는 자는 공허(空虛)하다고 하고, 오직 그 생성의 변함없는 법칙을 깨달은 자만이 도(道)라고 하고 성(性)이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볼 때 기(氣)의 움직임의 변화는 자연의 천기(天氣)의 움직임의 변화와 인간 인기(人氣)의 움직임의 변화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기(氣)의 형상화

화가 금경은 “근원적으로 천기와 인기의 작용은 동일하므로 인기는 천기의 일부이자 이에 속한다고 보고 그러한 인기의 활동운화는 자유분방한 예술창작에서 그 중요성을 부여받는다”고 말한다. 작가는 기(氣)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미학적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이를 조형화함으로써 전통적 사유를 현대 추상회화에 접목시키는 실험적 작업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금경의 석·박사 논문이 ‘기의 형상화’에 관한 내용이고 보면 그의 작업에 있어 의미론적으로나 실천적 측면에 있어 기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류하는 형식이자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고고한 기의 흐름을 보여주는가 하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강한 에너지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침잠한 정숙성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제어한다.
작가가 2001년에 발표한 <氣-∐>의 경우 7m가 넘는 대작으로 작가가 대상에로의 심입을 통하여 형상이 작가에게 주는 구속과 허위에서 해탈함으로 얻어진 형상일 것이다. 이는 북송대 구양수(歐陽脩)가 “뜻을 그리고 형(形)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한 경지를 떠올리는데, 비록 형상의 묘함을 갖추지 않았지만 기운이 있어 회화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사유케 한다. 결국 그의 그림은 ‘형태의 추상화(抽象化)’다. 여기에서 말하는 형태의 추상화란 대상 본래의 모티브를 요추한다는 재설정의 개념이 아니라 출발부터가 다른 방법과 목적을 가지고 대상에 접근해서 얻은 형태라는 말이다. 지극히 전형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을 추상화시켜 경험적인 차원으로 바꾸는 것,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개인지향주의적인 미술의 특질을 보편지향주의적인 의미로 재설정한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대저 기(氣)라고 하는 물체는 견줄 곳이 없을 만큼 커서 이 기가 쌓이면 힘을 낳고 운화하면 신(神)을 낳는다. 바로 이러한 것이 기의 본성이요 본능으로서, 넓고 크며 거침이 없어서, 구구한 명칭이나 형상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이다.(崔漢綺)
 
이 지점에서 필자는 2003년 섬유 원단을 캘리그래프 형상으로 갤러리 벽면에 횡으로 길게 늘어뜨린 작품에 주목하게 된다. 이 천은 표현의 매개적 수단이자 그 자체가 매체적 특징을 지닌 채 강한 표현적 속성을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어필된다. 이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화면은 여전히 강한 회화적 아우라를 풍기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데 이 둘의 결합은 미술의 장르적 속성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오히려 우주의 속성에 대하여 탐문케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포착할까를 사유하며 일획 속에 이를 담고자 하는 문인화가들의 욕망과 절충하면서 더 나아가 캔버스의 한정된 형상을 초탈하여 무한공간을 지향하며 무의식적 충동을 드러내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열망과도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형태나 공간, 구상과 추상, 형사와 사의, 평면과 입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서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면서 기(氣)라는 문제의식으로 우리를 되돌리고 있다.
 
바람의 형상화
금경의 작품 속에서 율동하는 획들은 “기(氣)를 주제로 한 자연의 기운찬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가는 또한 이것은 “인간의 기, 즉 육신에 흐르는 뜨거운 피의 움직임의 세계”라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데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재현이 미술의 전부가 아니듯이 명증성의 영역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다. 기는 보이지는 않으나 없는 것이 아니다. 바람 역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노출증 환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놓아야 하는 숙명적 입장을 타고난 존재다.
이에 금경은 어느 시대나 표현의 문제란 끊임없이 ‘형상화’를 둘러싼 문제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어떻게 하면 동일성의 환상에서 외부성이 곁들어 있는 비동일성의 세계를 자각할 수 있는가를 탐문한다. 대상을 표상공간으로부터 일탈시켜 그 외부성에 기를 불어넣는 것, 그리고 그것의 타자성을 인정해 차안과 피안이 교접하는 선명한 관계의 장을 여는 것, 이것이 작가 금경이 작업과정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작품 <氣畵-life-story>연작이나 <氣畵-바람소리>연작은 작가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일단 그는 대상이 갖는 형상성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물감 자체의 변주와 유․무형의 형태가 갖는 서로간의 긴장관계에 주목한다. 캔버스의 제작에서부터 작품의 마무리에 이르는 그녀의 작업과정은 지난한 노고와 반복적인 작업, 그리고 회한과 희열이 서로 교차하는 긴장과 이완의 상충점이 된다. 물론 이점은 대부분의 추상화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금경의 경우 이미 구상작업으로 그림을 시작하였고 이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기나 바람의 형상에 대한 잠재적인 애착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더 이상 형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보다는 형태의 차원뿐 아니라 정신과 조형의 이중적인 차원까지 포괄하는 시각에 접근함으로써, 그의 회화적 지평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점은 금경이 페인팅은 물론 오트파트나 드리핑, 오토마티즘, 그리고 설치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다양한 형식언어에 천착하는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그의 행위에는 주체와 우주를 관류하는 에너지인 기(氣)가 우주 속에서 자신의 현존을 드러내는, 즉 자신이 우주의 일부임을 각성케 하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한 가운데 드러낼 주제가 가시화되고 개인 감성이 거리낌 없이 촉발되어 자아라는 출발점으로 예술을 되돌려 놓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작가에게 있어 기와 바람을 형상화한 추상작업은 우리가 자연에 대하여 품고 있는 관습적인 인식(대상들의 분할, 원근법 등)을 새롭고 직접적인 감각으로 대체함으로써, 언어와 메시지 그리고 마침내 이미지조차도 없는 무념의 공간을 창출하게 되는 방법적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균제와 균형, 그리고 비례의 미를 추구한 그리스미술에서 조차도 확실한 현실보다 부재하는 이상을 지향했듯이 말이다. 이윽고 그는 기하학 뿐 아니라 형태까지도 해체시킴으로써 형상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즉 비형상으로 형상에 도달하고자하는 역설적 단련법을 통하여 형상을 새롭게 복권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경모/미술평론가(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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