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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_극재 정점식 화백 탄생 100주년을 보내며
17/11/03 10:48:31 아트코리아 조회 2788
비로소 ‘극재’ 예술을 품다
극재 정점식 화백 탄생 100주년을 보내며

 

정점식 화백

올해가 극재 정점식(1917~2006)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부랴부랴 교육자이자 이론가, 작가였던 선생의 연보를 확인해보았다. 그렇잖아도 같은 해에 태어난 장욱진(1917~1990)과 박고석(1917~2002) 선생, 한 해 전에 태어나 올해 상반기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탄생 100주년전을 가진 유영국(1916~2002) 선생 등의 기념전과 출판물을 주목해 왔는데, 정작 등잔 밑이 어두웠다.(박고석과 유영국 선생은 극재 선생과 더불어 ‘모던아트협회’ 회원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대구에서 6월과 7월에, 그리고 10월에는 극재미술관에서도 기념전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작품이 이라면 출판물은 손가락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출판인으로서 마음이 가닿은 것은 극재 선생 관련 출판물(단행본)의 부재였다. 장욱진 선생만 해도 자작 에세이 전체를 모아서 정본(正本)화한 책(『강가의 아틀리에』)과 제자인 조각가 최종태 선생이 스승에 관해 쓴 글들을 모은 책(『장욱진, 나는 심플하다』)이 연달아 출간되었다. 유영국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도 때늦었지만, 올해에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 문집(『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며』)도 한 해 뒤인 최근에 선보였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극재 선생이 생전에 출간한 네 권의 에세이집(『아트로포스의 가위』, 『현실과 허상』, 『선택의 지혜』, 『화가의 수적』)과 그 후에 쓴 글들을 성격별로 재분류하거나 정리한 책, 전기나 평전, 추모 문집, 작품 세계에 관한 평론 모음집 등에 생각이 미쳤다. 탄생 100주년의 해에 이런 식의 책이 한 권도 선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작품이 ‘달’이라면 출판물은 ‘손가락’이다. 사람들은 손가락을 통해 달로 향한다. 작품의 폭넓은 향유를 위해서는 다양한 출판물이 요구된다. 관련 출판물은 앞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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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선생이 펴낸 책들

자기 문체와 호흡을 가진 에세이스트

나는 2002년에 선생의 에세이를 엄선한 『화가의 수적』을 낸 바 있다. 원래는 미술이론 성격의 책을 한 권 더 출간하려고 했지만 결국 때를 놓쳤다. 세 권의 에세이집에 수록되었거나 발표는 했지만 책으로 묶이지 않은 이론 친화적인 글들이 그것이다. 선생의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해서 이제는 마음의 빚이 되었다.

선생은 문장으로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자기 문체와 호흡을 가진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특유의 문체는 선생이 자신의 인생 역정을 밝힌 글의 제목처럼 ‘독학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체는 사유의 결이자 정신이어서, 이야기를 더 깊은 세계로 이끄는 미덕이 있다. 선생의 글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었다.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조곤조곤 나눈다. 이런 특징은 이론을 앞세운 글에서도 확인된다. 독학으로 습득한 서양미술 이론에 정통했던 선생은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이었을 만큼 미술이론에 밝았다. 「대중문화와 예술」을 비롯하여, 「아마추어리즘과 자발성의 유희」, 「액션페인팅과 샘 프란시스의 타쉬즘의 의미」, 「피카소 혁명의 비밀」, 「한국미의 재발견」 같은 글은 이론가로서 선생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때그때 청탁에 응해서 쓰인 글들은 당시 선생의 생활과 사회, 문화, 예술계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런데 선생의 사후에 다시 읽은 그 글들은 이상하게도 작품 세계의 각주(脚註)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품과 멀거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한결같이 작품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추상 작품은 특성상 드라마틱한 이미지의 부재로 선뜻 이해하고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워한다. 다행히 선생은 슬하에 “삶의 평형을 떠받치고 있는 예술의 의지를 담은” 글을 많이 두셨다. 우리는 작품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그 글들에 의지하며, 웅숭깊은 작품 세계의 자락이나마 답사할 수 있다.

선생의 예술적인문적 진경(眞境)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생이 남긴 책들과 육성이 담긴 구술 자료, 평론가들의 평문과 대구 미술 관련 논문들, 우리 근현대 미술사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한 달여를 살았다. 선생의 삶과 예술적 역정이 비로소 눈에 잡혔고, “벅차오는 가슴”이 되었다. 선생은 동년배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인문주의자였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다.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으로 문사철(文史哲)을 내면화한, 도저한 조형 언어의 인문주의자가 선생이었고, 작품은 그 자체로 인문학이었다. 그랬다. 당분간 선생의 예술적, 인문적 진경(眞境)에 들기 위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훑고, 우리 근현대미술사와 선생의 삶과 작품을 곱씹으며 보내게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뜻은, 한 작가가 생을 다해 남긴 작품 세계와 자취를 깊이 품어보는 기회를 갖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예술은 어떤 확실한 의미를 지시하기보다는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속에 있는 여러 가지 잠재적인 뜻을 스스로 찾게 하면서 작가 같은 경험을 심는 일, 아니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하여금 그것을 재창조하게 하는 일이다.

한 작가의 탄생은 새로운 예술의 탄생이자 새로운 미의식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선생이 ‘미술인들의 작가’에서 ‘모두의 작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회고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극재 예술의 진수를 추출해내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예술은 작가 개인적인 작업에서 시종(始終)되지만 그 목적은 개인적인 존재를 넘어서 사회나 인간을 향해 방사하는 메시지”에 있기 때문이다. 선생의 작품은 자서전이요, 한 시대의 초상이다

 정민영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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