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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과 시선 영화관에 가는 동물_ 권현준
17/05/31 14:09:11 아트코리아 조회 3449

현상과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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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권현준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인간은 영화관에 가는 동물(Moviegoing Animal)’이라고 정
의했다.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미지’라는 것에 큰 흥미를 보이지만, 그 이미지가 거짓임을 알고도 그것에 매혹되는 동물
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영화관에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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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열차의 도착> 한 장면
2 미국 토론토에 위치했던 니켈로디온
3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1_____ 영화관의 시작
영화가 탄생한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영화관을 찾았다. 1895년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L’arrivée d’
un train)>은 프랑스 파리의 그랑카페 지하에서 33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처음 선보였다. 당시 상영은 뤼미에르 형제가 개발한 ‘시네마
토그라프’라는 상영 장치를 이용했는데, 관객들이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보고 혼비백산해 달아난 사건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보다 조금 앞선 시기, 미국에서는 발명가 에디슨이 개발한 상영 장치 ‘키네토스코프’가 있었다.
 
이는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투사해 상영하는 시네마토그라프와는 달리, 만화경과 같은 원리로 사람이 직접 기계를 들여다보는 방식이
었다. 지금으로 치면 휴대전화를 통해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라는 이 신비로운 광경을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비싼 관람료를 지불해야 했고, 이로 인해 영화는 중산
층 이상 계급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등장한 일명 ‘5센트 극장’이라고 불리는 상설 영화관 ‘니켈로디온
(nikelodeon)’은 큰 변화를 불러왔다. 값싼 관람료는 노동자와 이민자 등 다수의 하층민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는 계급도, 인종도, 성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이들은 관객이라는 공동체로 함께 존재했다. 결국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러한 상설 영화관의 확산은 하층민의 팍팍한 삶을 위로하며, 영화를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오락거리로 만들었다.
 
 
 
 
#2_____ 영화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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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에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1930년대는 큰 변화의 시기였다. 이 때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쓸모가 없
어진 무성영화 필름을 처분하고 있었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러한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청년 앙리 랑글루아는 버
려지는 무성영화들을 보존하고자 장 미트리, 조르주 프랑주 등과 함께 영화 제작사를 돌며 필름을 수집했고, 심지어 쓰레기통에 버려
진 필름들을 건져오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1935년에는 무성영화만을 위한 씨네클럽을 만들었고, 이는 이듬해 영화를 상영하
고 보존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émathèque Française)’로 재탄생하게 된다.
 
시네마테크는 영화(Cinéma)와 도서관(Bibliothèque)을 결합해 만든 용어로 ‘영화 박물관’이라고 해석된다. 앙리 랑글루아는 그렇게 최초의 시네마테크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하고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도 2만여 필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전쟁 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엔 수많은 예술인과 영화광(시네필)들이 매일같이 찾아왔다. 
 
때때로 그곳은 영화에 대한 격렬한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는데, 그것을 체험한 당시 어린 관객들(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은 이후 세계 영화사즈라는 공간은 영화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3_____ 위기의 영화관
세월이 흐른 지금, 영화 보기의 방식은 점차 다양해져 가고 있다.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전통적 방식의 영화 보기뿐만 아니라,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전으로 휴대전화, PC 그리고 IPTV를 통한 영화 보기 역시 이젠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넷플릭스’라는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영화관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효한 플랫폼이 아닌 것이다 .
 
넷플릭스를 둘러싼 논란은 <옥자>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심화되었다. 프랑스 영화계는 전통적인 상영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영화들을 초청해선 안된다며 반발했고, 칸영화제는 다음 영화제부터는 프랑스 내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영화들만 경쟁 부문에 초청하겠다며 규정을 바꾸었다. 프랑스가 자국의 영화법에 영화관에서 상영된 뒤 3년이 지나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규정 해 놓은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이 쌓아온 영화관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기의 영화관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큰 것이다.
 
결국 영화 보기의 방식이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 영화관에 간다는 것은, 영화를 본다는 것 그 이상의 기대와 가치가 있을 때 가능한 행위가 될 것이다. 영화관이 오래 전부터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것 외에 다양한 것들을 제공해 오면서 명맥을 유지해왔듯, 앞으로도 영화관은 유효한 영화 보기의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자본을 앞세운 멀티플렉스는 규모의 거대화와 기술적 변화를 추구하며 개인화된 영화 보기에 맞서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것이다.
 
결국 영화관의 위기는 예술영화관이나, 독립영화관의 위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영화관들은 영화관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변화의 시대를 거치고도 많은 무성영화가 여전히 걸작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처럼 예술영화관과 독립영화관도 가치 있는 영화관으로 살아남을 수 있길 바란다.

출처 네이버 월간대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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