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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그들_한국화가 서승은
17/03/30 10:39:07 아트코리아 조회 3881

젊은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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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면서도

강인한 소녀, 그리고 작가

 

                                 한국화가 서승은

 

 

그림 속에는 청아한 표정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얼굴은 한편으로는 창백하고 슬프게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일종의 신비로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여기에 소녀를 둘러싼 독특한 장식들이 이 신비로운 힘을 가중시킨다. 가만히 살펴보니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다육식물이다. 아기자기한 형태의 이 식물들은 장식을 넘어 마치 소녀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주변에는 작은 새나 꿀벌, 나비, 산양 등도 등장한다. 화사하면서도 수수한 색감으로 그려진 이 모습이 사람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멈추게한다.

 

‘다육식물 소녀’ 시리즈로도 알려진 이 그림의 주인공은 한국화가 서승은(35) 씨다.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그의 팬층은 두터운 편이다. 특히 온라인이나 SNS 상에는 그의 그림에 호감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화감독 장진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얼마 전에는 장 씨와 직접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하듯 ‘다육식물 소녀’ 시리즈는 몇 년 전 국내 한 문구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팬시 상품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한 출판사와 그림 에세이 발간을 계약하며 중국 진출까지 앞두고 있다.

“순수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 같아요. 그건 사실 다육식물이 지닌 특징이기도 한데요. 10여 년 전부터 직접 다양한 종류의 다육식물을 키우면서 느낀 것이기도 하죠. 저 역시 다육식물들로부터 그런 위안을 받곤 하거든요.”

 

 

다육식물과 소녀, 한국화로 만나다

선인장 등으로 대표되는 다육식물은 주로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지만, 한편으로 물과 빛에 민감하다. 그의 그림은 다육식물의 이러한 생육적 특성과 민감한 소녀의 감수성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이는 사물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관심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오랫동안 100여 종이 넘는 다육식물을 키우며 이러한 특성들을 발견했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작업을 한국화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기를 흡수하는 다육식물의 특성과 창백하면서도 따뜻한 소녀의 감수성, 그리고 그 속에 번지는 생명력은 한국화의 주재료인 한지와 안료의 만남을 연상케 한다. 재료와 소재, 그리고 주제가 그의 그림 속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녀를 그리는 그림들은 많죠. 대개는 서양화들인데, 한국화는 그것과는 느낌이 달라요.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 한지에 고스란히 스며들게 되죠. 감정이 서려있다고 할까요. 저는 한국화의 그런 특징을 좋아해요. 게다가 아직까지 다육식물과 소녀를 소재로 그리는 작가는 보지 못했어요. 한국화를 통해 저만이 그릴 수 있는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 지금의 작업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물론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한국화와는 거리가 멀다. 언뜻 보면 수채화나 일반적인 서양화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북예고와 계명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재학 시절 수업에 충실한 편은 아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수업 대신 주로 혼자서 그림을 그렸고, 한지에 바느질을 하거나 물감 대신 화장품이나 커피로 채색을 하는 등의 실험들을 이어갔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늘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랬죠. 초등학교 때 동양화과 출신의 미술 선생님이 계셨는데, 특이하게도 수채화를 한지에 그려보는 수업을 하셨어요. 굉장히 새로웠죠. 그때부터 한지에 매력을 느꼈고, 다들 그리는 서양화나 입시 미술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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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 with life’ (2017)

 

 

 

 

깨어있는 작가, 머무르지 않는 작가

그림만 놓고 보면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이 연상되지만, 사실 그는 강인한 성격과 뚜렷한 자기 주관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전업작가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대신 직접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그림을 판매하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 있는 갤러리 두 곳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5년 간 작업실에 묻혀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작업에만 매달린 적도 있다. 요즘도 전시를 앞두고는 손이 다칠 정도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그림을 그릴 때 손이 워낙 빨라서 그렇다.”고는 했지만, 이러한 모습들은 그가 말한 ‘다육식물 소녀’의 순수함 속 강인함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14년 키다리갤러리 개관과 함께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구의 젊은 화랑과 젊은 작가가 만나 동반 성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지역 미술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갤러리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셨죠. 물론 대구가 아니라 미국이나 서울로 갔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꿈꾸는 것은 유명인이 아니에요. 그림이 좋고, 제가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죠. 지금처럼 차근차근 나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는 최근 한중 외교문제로 계획되었던 중국 진출이 연기되면서 여러 가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 꿋꿋하게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달 5일부터 키다리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을 담은 전시다. 중국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자 했던 신작과 대표작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줄 계획이다.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를 채찍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는 ‘아침’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다육식물들에게도 그렇지만, 저 자신에게도 해가 뜨는 아침은 중요한 순간이거든요.”

 

앞으로는 20대에 그렸던 ‘자화상’ 작업을 다시 시도해보고 싶다는 의향도 내비쳤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이전과는 다른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한편으로 내면의 힘이 담긴 추상화를 선보이고 싶다고도 말했다. “결국 새로움과 즐거움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면에서 ‘다육식물 소녀’ 시리즈는 여전히 재미있는 작업이죠. 그 속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렇게 항상 깨어있는 작가, 머무르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사진|이승욱
-대구문화예술회관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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