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7    업데이트: 12-06-18 14:16

제2전시관

늙을 줄 모르는 靑谷글씨- 金兌庭(대구예술대학교 교수)
청곡 정계호 | 조회 2,275

늙을 줄 모르는 靑谷글씨

 

글씨를 쓰는데 있어 꼭 晋이나 唐의 옛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들을 하나 거기에 꼭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의 구상을 붓으로 나타내어 보기에 어색하지 않으면 된다. 결국은 어느 경지까지 이른다는 것은 나의 天分에 달려 있는 것이요, 무엇보다 먼저 俗氣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글씨가 오늘날에 사는 우리의 생활이고 보면 옛것을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극치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옛것을 가짜로 흉내내기보다는 진짜인 현대의 글씨를 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다만 나의 마음에 즐겁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紫霞申緯의 시 속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가 평생 중국의 서가 董其昌의 글씨 그늘에서 못 벗어난 것을 보면, 참으로 글씨가 쉬운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무렵 중국에서는 紫霞보다 선배인 金農(1867-1763)은 篆隷를 楷書와 行書의 큰 글자에 응용하여 오늘날의 고딕체와 같은 특이한 서법을 창안하였고, 鄭燮(1693-1795)은 隷書를 楷書와 섞어서‘六分半體’라는 특이한 글씨체를 만들었으며, 紫霞와 같은 시대인 伊秉綬(1751-1815)는 漢隷의 筆意를 해서와 행서에 적용하여 새로운 書體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정신을 보게된 金正喜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예술은 確信과 集中力에서부터 엄청난 변화가 나오게 된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같은 도반으로 글씨를 배우던 젊은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靑谷이 벌써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글씨가 人書俱老라고 했는데 靑谷은 늘 공부하는 겸허한 자세로 일관했고, 함부로 글씨를 날리지 않아서 수십년이 흐른 지금에도 글씨가 늘 젊고 싱싱하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빨리만 가려고 하는데 靑谷은 언제나 젊은이로 남고 싶어하고, 글씨도 고지고식대로 習氣를 버리지 않아서 정신적인 新鮮度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 ‘靑山不老身上健, 流水無心意自閑’이라는 글이 보이는데 청곡의 마음이 이와 같고 또 號그대로 살고 있다. 언제나 봄, 여름의 靑谷이지 가을, 겨울을 거부하는 사람처럼 늙어가기를 싫어한다. 노쇠하지 않고 늘 젊게 살려고 하는 靑谷도 별수없이 몸은 늙어간다. 젊고 싱싱하게 견디다가 어느때 古木 같은 글씨를 쓰는 靑谷을 상상해 본다. 참으로 멋진 글씨가 나올 것이다. 刮目相對란 말은 그때를 위하여 아껴두기로 한다.

 



말도 작품도 꾸밈이 없는 사람, 속도가 느린 靑谷을 나무래다가도 차라리 발걸음을 쳐자서 그와 함께 그냥 어슬렁어슬렁 걷고 싶을 때도 있다. 또 서예가 마음 닦는 일이나, 수양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강변하다가도 靑谷이 靑山처럼 流水처럼 사는걸 보면 그의 마음 씀씀이가 참 옳다는 생각도 든다. 천연덕스럽게, 그의 당호처럼 옥을 깎는 정성으로 步幅을 짧히는 靑谷의 和平이 부러울때도 있다. 이런 정신 때문에 글씨가 현대미술처럼 딴판으로 나타나지 않고 늘 본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전통은 재창조의 정신과 만났을 때 예술로 변한다는 말은 金言이다. 靑谷의 이번 전시가 짜여진 계획대로 준비를 해온 것이 아니고 틈틈이 써 놓은 것이 작품전을 열만큼 되었다니 우선 축하하고, 젊고 싱싱한 작품을 보면서 빨리 늙어가는 내 예술의 본보기로 삼고자 한다. 서예가 무엇인가? 서예가 현재 우리의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 靑谷의 전시, 순박하기 그지없는 靑谷,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하여, 文運이 불같이 일어나 정신을 활활 태우는 千載一遇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祈願한다.

 


金兌庭(대구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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