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24-03-1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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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법유법
관리자 | 조회 596

서법유법

 

 

서법유법을 쓴 작가 쑨샤오윈  손효운


1955년 8월 남경에서 출생했다.
강소성 미술관부관장,  중국 1급미술사,  중국서협이사,  중국 서협행서전문위원회 부주임,

강소성 서협부주석, 남경시서협주석, 남경시문연부주석, 강소대학교 석사생지도교수이다.

 

 

 

金陵 금릉

 

능금이 유명한 대구,

능금을 거꾸로 하면 금능, 그래서 일까?

금릉사람들과 서예로 인연이 계속 되는 것 같다.

중국엔 '南京난징'이 한국엔 '金泉김천'이 '金陵금릉'으로 불리워진다.

배규하 선생님, 황돈, 서리명, 손효운, 그리고 계대에 오셨던 동양화가 교수님까지.

금릉과는 남다른 서예적 인연이 있다. 중국에 와서 북방지역인 산동에서 서예를 배웠다.

환경의 영향은 크다. 북비남첩이지만 행서에 있어서의 나의 심미관은 첩에 응한다.

특히 황돈과 손효운 교수의 작품이 나에게 흥을 일으켜준다. 

 

 書法有法   서예는 법이 있다

 

전통에 대한 중요성과 집필법에 대한 자유로움을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 서예를 전공할 마음을 먹었던 고등학교 시절 힘들게 집필법을 익혔던 기억이 난다.

당시 여초 선생님 동방연서회 2기생이셨던 동보 선생님께 집필법을 익혔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활발히 활동하던 대구서학회 선생님들께 팔등법을 익혔다.

굉장히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힘든 과정이었다. 그때 생각했었다.

이런 집필법이어야만 정말 제대로 된 멋진 글이 나오는 것일까?

 

 서법보 2009년 9월 23일에 실린 기사를 번역해 본다.

 민승준

 

 

 

1

선생님께서 출판하셨던 책 서법유법은 서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은 고인의 필법을 이미 상실했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최근 중국 서법에 있어서의 ‘전통’ 심미관은 세 종류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서양미학, 철학, 심미학, 기하학 학자의 시각으로 자세히 분석해 보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중국도가, 불교, 선종, 일본서도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정신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역대 史论사론을 배경으로 삼는 귀납적 서술의 각도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전통이라는 심미관에 대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한두 종류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려서 말하지 않아야 하고 보여지는 책들 속에만 나열하거나

군더더기 같은 답안을 쌓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간단하게만 인증해버리거나 어떤 일가의 논술에 미혹되어 그대로 믿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고대 서예가들의 이론과 실천에 꼭 들어맞게 완벽하게 해석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스스로가 제시한 이론과 실천이 반드시 필연적인 상관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장래의 서예발전에 대해 계발하고 이끌어내는 데 의의가 있어야 합니다.

 

 

 

 

서법유법은 1998년 1월에서 8월까지 땀을 흘린 끝에 이루어 낸 책입니다.

서예에 있어서 어떤 문제들이 제 마음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고동치고 있었습니다.

43세가 되는 해에 비로소 그런 문제들에 대해 풀어낸 것일 뿐이어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서법유법은 2001년에 중국대륙에서 2003년에는 대만에서 모두 5만여권이 출판 되었습니다.

현재 모두 팔려버리고 절판되었습니다.

 

 

 

최근 새로운 인식과 생각들을 모아 <서법유법>의 속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법은 어떠한 모습이였는지에 관해

 왕희지의 서론에는 언급되어지지 않았는지,

동일한 시대 서예가들도 이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밝혀 보려 합니다.

 

당시의 글쓰는 자세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보통의 자세” 였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서법의 “법”, 혹은 "고법"이라 불리는 것은

 우선 반드시 이러한 자세의 전제하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붓을 다루는 것을 논해야 합니다.

즉, 고법의 서사상태는 종이를 손에 들고 서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교서도>, <죽림칠현>, <열녀전>, <여사잠도>등의

송나라 부터 전해 내려오는 여러 유명한 전적중에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서사하던 모습은 책상에 종이를 펼쳐두고 쓰는 것이 아니라,

서있든 앉아있든 손에 종이를 든 자세로 썼습니다.

 

수 당나라 시기부터 책상을 사용해서 글 쓰는 시작했습니다.

후대 서예가들은 당나라 이후에 고법이 쇄락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고법'이란 '손에 종이를 들고 서사하는 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법쇄락'이란 책상을 사용해서 서사했기 때문에

이런 의탁함이 없는 서사방법은 당연히 점점 소실되어진 것입니다.

당나라의 고법은 서곡이 연주되지 않는 연주회 모습과 같습니다.

 

 

 

 2

선생님, 고대의 법으로 창작을 하십니까?

 선생님께서 창작하시는 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다시피 저도 역시 글씨를 배울 때 경전에 집착했습니다.

손목이 끊어질 듯 아픈 경험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늘상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땡땡이 치고

외우고 다니던 것은 여러가지의 집필법이었는데

정작 그은 획들은 손에 편하거나 정확한 집필법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이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저는 줄곧 마음 편하게 집필하기를 주장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꼬집어 내어 지적합니다.

제가 쓴 글씨가 잘 썼다고 보여지는 것은 규정된 집필법을 착실하게 지킨 것과는 무관합니다.

고인의 '경전'적인 집필법은 지금에 있어서는 그 형태는 동일하지만

 허위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실제로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고인들의 ‘오지제력’ 집필법은 고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말해지는

 독특한 용필 방식이라고 여겨집니다.

 

 

 

 

3

선생님께서는 서예의예술성과 실용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서예에 대한 인식은 서법유법에도 거론한 바 있습니다.

서예는 예술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자를 매개체로 삼는 실용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서예를 순수 예술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문자에 대한 경외감과 존중은 쉽사리 사라져 버리게 되고

 어지럽게 바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물론 일부분의 사람들은 형식적인 부분을 연구, 탐색해 나가는 것을 허락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전통적인 것들을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서예의 실용성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사실 전통이라는 것은 힘든 과정입니다.

아주 많은 시간동안 공을 들여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

 짧은 기간내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은 전통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것으로 놀러가는 것이라고 생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