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    업데이트: 24-03-19 19:14

협회게시판

한국전각의 발전을 위한 조언
관리자 | 조회 299
한국전각의 발전을 위한 조언

-붓맛과 칼맛 사이-
 

민승준 (후마네르범어도서관)
 
서예는 예술성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자를 매개체로 삼는 실용성도 가지고 있다. 이점을 홀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 많은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서예의 실용성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자에 대한 경외감과 존중은 사라지게 되어 서예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지럽게 바르는 것이 되고 만다. 물론 일부분의 사람들은 형식적인 부분을 연구, 탐색해 나가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것들을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서예의 실용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사실 전통이라는 것은 힘든 과정이다. 아주 긴 시간 수련하며 공을 들여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전서를 잘 써야 전각을 잘 한다고 하는 말이 어제부터인가 점점 잊혀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전각예술은 운필(運筆)의 맛을 살린 중국의 전각과 날카롭게 베인 맛을 주는 일본의 전각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류에 따라 어지러이 유행을 좇으며 중국의 붓맛과 일본의 칼맛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선인들이 개척해 놓은 길을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것만 못하다. 끊임없이 수련을 견디어 내며 선인들을 따라간다면 반드시 옳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것이 점오(漸悟)의 길이다. 이 글에서는 그 힘든 수련의 과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아울러 필자는 한국의 전각미를 찾아야 함을 느낀다. 집필법, 전서창작법, 중봉, 독첩법, 조형법을 전각예술에 잘 응용한다면 점오(漸悟)의 길에 힘을 보탤 뿐만 아니라 한국미를 담아낸 한국전각의 특성을 살려낼 수 있다고 본다.
 
1. 집필법(執筆法)
한국전각에서는 집도법(執刀法)이란 형식에 너무 억매여 자연스런 획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손효운(孫曉雲)의 집필법에 대한 견해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는『서법유법(書法有法)』에서 “마음 편하게 집필해야 한다. 어려운 집필법에 맞게 쓰려면 늘 획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정작 좋은 획들은 편하게 잡고 쓰거나 정확한 집필법에서 조금 벗어난 상태로 쓴 것들이다. 남들에게 잘 썼다고 평가받는 나의 글씨는 대부분 규정된 집필법대로 착실하게 쓴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책상위에 종이를 놓고 쓰는 것이 아닌 종이를 들고 쓰는 법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집필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바꿀 수 있다. 책상이 나오기 이전에는 종이를 손에 들고 서사(書寫)했다. 책상에 종이를 펼쳐두고 쓰는 것이 아니라, 서있든 앉아있든 손에 종이를 든 자세로 썼다. 종이를 들고 쓰면 붓을 운 행함에 있어 제안(提按)을 잘 통제할 수 북제교서도 여사잠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변화를 담아낼 수 있다. 송(宋)나라부터 전해 내려오는 여러 유명한 전적(典籍)을 보면 손에 종이를 들고 쓰는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특히 <북제교서도(北齊校書圖)>, <여사잠도(女史箴圖)>에서는 책상에 의존하지 않고 서사(書寫)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수(隋)당(唐)나라 때부터는 책상을 사용해서 서사했기 때문에 이런 자연스런 서사방법은 점점 소실되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서사(書寫)행위에 어긋나는 집필 이론을 가르쳐 왔고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 교육받았다는 사실이다.
전각에서도 인상(印床)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변화의 붓 맛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정교한 작업 시에는 인상(印床)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인상(印床)에 의존하여 판에 박은 듯한 전각작품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 우려된다. 더 많은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대 서예가들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정확하게 해석해 낼 수 있어야 하며 우리 스스로도 반드시 이론과 실제가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을 때 다른 이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서예와 전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2. 전서창작(篆書創作)
중국은 청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전서창작에 크게 세 가지 패턴이 있었다. 석개(石開)는 세 가지 패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는 의양모사(依樣摹寫)로 모양에 따라 모사하는 것, 둘째 의양변형(依樣變形)으로 모양에 근거해 형태 바꾸는 것, 셋째 해구중조(解構重組)로 구성을 이해하고 결구를 풀어헤쳐 다시 조합하는 것이다.”
의양모사(依樣摹寫)는 명칭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정확하고 흡사하게 창작하는데 목표를 둔 패턴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오대징(吳大澄, 1835~1902)과 장유송(蔣維松, 1915~2006)이 있다. 공들이고 애써서 얻는 패턴이다.
                        
오대징                                    장유송

 
의양변형(依樣變形)은 어떤 고대의 조형을 근거로 삼아 그것을 적당히 바꾸는데 최종적으로는 개성적인 면모를 형성하는 것이다. 조지겸(趙之謙, 1829~1884)이 등석여(鄧石如, 1743~1805)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모습을 갖춘 모습, 오창석(吳昌碩, 1844~1927)이 석고문(石鼓文)을 근거해 창작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지겸                                     오창석
 
해구중조(解構重組)는 현대의 미술개념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조형결구를 깨뜨리고 새롭게 조합한 후 개성적인 면모를 형성하는 창작법이다. 이러한 패턴은 매우 현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제백석(齊白石, 1864~1957)과 황빈홍(黃賓虹, 1865~1955)의 전서작품에서 이미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표현이 보인다. 또한 이런 비정식적인 조합은 말하기엔 쉽지만 실제로 매우 어려운 창작법이다. 창작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잘못 창작했다가 남들에게 조롱받기 쉽다.
 
                          
제백석                                     황빈홍
 
예술 창작으로 보면, 의양모사(依樣摹寫)는 심미적 가치가 없다. 하지만 전서를 배우는 기본이 된다. 반드시 이 창작법으로 착실하게 연마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며칠동안 이 방법을 따르고 나서 다 터득했다고 여기고 더 이상 이 방법을 연마하지 않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전서와 전각의 창작은 얼마나 의양모사(依樣摹寫)에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느냐가 작품 속에 드러난다. 공을 들인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 ‘식전(識篆, 전서를 인식함)’이다. 식전(識篆)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은 꽤 오래 걸린다. 의양변형(依樣變形)와 해구중조(解構重組)는 ‘도(度)’를 장악해야 한다. 비록 ‘도(度)’는 예술에 있어서의 명확한 잣대는 없지만 진퇴(進退), 존망(存亡)을 다루는 키워드이다. 그러므로 격이 높은 예술을 하려면 ‘도(度)’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은 예술의 경지는 끝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서(篆書)라는 형식은 앞으로도 변화무쌍한 개성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다양하게 변화 발전할 것이다. 전각도 이러한 전서 창작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
 
3. 중봉(中鋒)
 심윤묵(沈尹默, 1883~1971)은 ‘필필중봉론(笔笔中鋒論)’을 말한 바 있다.
모든 글씨를 쓸 때에 중봉(中鋒)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이다. 그의 전각작품을 보면 중봉에 매우 신중을 기했음을 느낄 수 있다. ‘필필중봉론(笔笔中鋒論)’의 근원은 전서(篆書)에 있다. 가장 근원적인 용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 303~361)의 묵적을 꺼내서 분석해 보면 용필할 심윤묵 때마다 중봉을 다 지킨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변화의 맛이 잘 어우러졌기에 전체적으로 훌륭한 작품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황돈(黃惇)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들은 심윤묵(沈尹默)이 용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본다.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비학파(碑學派)들이 가장 강조하는 필법인 중봉을 강조하지 않고서는 그 당시에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는 관념상의 충돌인 것이다.” 시대에 따라 중봉의 개념은 다양하였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하나의 생각만이 절대 옳은 것이 아니다. 시대를 볼 줄 알아야 제대로 중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시대에 있어서 전각에서의 중봉을 이제 새로 느껴보아야 할 것이다. 정체성이 중요시 되는 이 시대에서의 중봉(中鋒)은 필봉(筆鋒)에 감정이 실려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해 줄 수 있는 감성적인 느낌이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4. 독첩(讀帖)
첩(帖)을 읽는 방법에는 거시적, 미시적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거시적인 방면은 시대정신, 풍격, 유파 등을 포함한다. 이 방법을 따르면 첩(帖) 속에서 정보를 읽을 수 있고, 한 서예가가 법으로 삼았던 것을 투시해 볼 수 있으며, 그 당시 시대의 역사도 읽을 수도 있다. 미시적인 방면은 필법을 보는 것이다. 필법에서 부터 더 나아가 어떤 붓을 사용했는가에서 부터 속도, 동작, 종이와의 마찰, 먹을 적실 때의 정도 문제까지 세밀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임서(臨書)함에 있어서는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에 대한 문제가 기본적으로 한정되어진다. 이는 당연히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늘 자신의 시각을 측량수단으로 해서 평가 내려버리는 점이 문제이다. 표상의 물건들은 항상 먼저 사람을 사로잡기 때문에 임서(臨書)할 때 먼저 형(形)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서를 했으면 버려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많이 임서를 했는지를 계산하거나 몇 년 동안 했느냐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깊이 있게 탐구함이 없이 수백 번 임모하는 것은 전심전력으로 첩(帖)을 읽거나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한번 써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첩을 임서한다는 것은 매번 높은 수준의 사고가 요구되는 심오한 작업인 것이다. 전각을 가르칠 때도 반드시 모각(摹刻) 이전에 세필(細筆)로 여러 차례 임서(臨書)해야 한다. 서예에서 독첩을 오래할 수록 좋은 작품이 나오듯이 전각에서도 모각할 대상을 오래도록 분석한 후에 많이 임서를 하고나서야 칼을 들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5. 멋진 획의 조건
우리는 작고 미묘한 것을 쉽게 보고 함부로 대한다. 하지만 이 미세한 부분들이 멋진 획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우상(張羽翔)은 서예의 조형원리를 통해 획의 기본 5요소를 방향, 길이, 위치, 형상, 질감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획의 방향과 획의 길이와 획의 위치는 결자(結字), 공간(空間), 흑백(黑白)의 관계의 문제로 ‘무엇을 쓸 것인가?’를 설명해 준다. 획의 형상과 획의 질감은 용필(用筆), 필법(筆法)의 문제로서 ‘어떻게 쓸 것인가?’를 설명해 준다. 획을 그을 때 결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획의 방향은 평횡(平橫), 앙횡(仰橫), 복횡(覆橫)으로 모필 운동의 방향을 나타낸다. 즉 필세(筆勢)이다. 필세의 방향성은 획의 마지막 부분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달려있다. 획의 길이는 기지점(起止点)의 문제이다. 글자의 형태가 획이 시작되는 지점과 획이 끝나는 지점의 위치에 달려있어 글자의 자태(姿態)와 동세(動勢)를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전각에서는 획 길이의 차이는 남겨지는 여백에 큰 영향을 끼친다. 획의 위치는 획과 획의 거리의 차이다. 크게는 같은 방향성과 다른 방향성의 획의 위치이고 작게는 연결되는 획과 끊어지는 획의 위치이다. ‘口’의 두 세로획의 윗 부분이 올라오게 쓴다면 윗 부분과 호응성이 생겨 글자의 긴밀성이 강해질 것이다. 즉 구체적인 소밀(疏密)관계를 보여준다. 전각에서 바로 연계하고 맞물리는 이 탑접(搭接)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획의 형상에서는 어떤 획이든 면적을 가지고 있다. 굵기와 폭으로 정리된다. 기지점(起止点)의 둥근 정도를 표현하기 위해선 장봉(藏鋒), 중봉(中鋒)이 필요하고, 모난 정도를 표현하려면 편봉(偏鋒), 노봉(露鋒), 측봉(厠鋒)이 필요하다. 납작한 서양의 붓으론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획의 질감에서는 허실(虛實) 및 먹의 농담(濃淡)이 중요하다. 재료의 선택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다. 집필방식에서도 선의 질감은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작가의 심리상태, 붓과 종이의 마찰감, 속도감 등 이러한 모든 요소가 질감을 변화시킨다. 종이를 들고 썼을 때의 책상에 종이를 두고 쓸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전각에서도 석인재(石印材)를 들고 새긴 획의 질감과 인상(印床)에 고정시키고 새긴 획의 질감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자기생각에 잘 되었던 작품은 다시 써도 써 내지 못하다고 한다. 이것은 질감과 많은 연관성이 있다. 서예는 특별히 영혼적인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글씨에 묻혀서 무언가 사라진 것이다. 쓰고 난 후 영감(靈感)을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글씨에 담겨졌다고 할 수 있다.
 
마치며
중국전각(篆刻)은 중국서예의 필치와 구조에 중점을 두고 있어 전각작품은 독립적인 예술품으로 감상할 수도 있는 훌륭한 예술로 대우받는다. 현대 중국전각예술가들은 서예의 필법에 뿌리를 두고 끊임없이 다양한 창작 작품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전각도 필사(筆寫)에 기본을 두고 있다. 일본 전서(篆書)는 길고 부드러운 붓으로 시원스레 척척, 느슨해 보이지만 탄력과 충실함을 깃들여 써내려가는 흐름이 보인다. 일본전각(篆刻) 또한 이 같은 전서(篆書)의 필사(筆寫)스타일을 기초로 하여, 격렬하고 날카로운 표현성을 보여준다. 직선적으로 통쾌하게 베여나가는 맛을 잘 살려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전각(篆刻)은 한국만의 큰 특색이 없을 뿐 아니라 연구하려는 사람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우선 붓맛과 칼맛 사이에서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칼끝을 그냥 죽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붓을 움직이듯 칼 끝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야 한다. 한국미는 빈틈없이 완벽하거나 작위적이고 치밀한 것이 아니다. 한국적인 미감은 뭔가 부족한 것 같지만 정감을 안겨주는 맛이다. 완벽해 보이는 장식적 대칭과 완벽 속에서 졸박미(拙樸美)가 드러나는 것이다. 전서(篆書)에서의 중봉은 필봉에 감정이 실려 정서적인 느낌이 표출되는 것이다. 오창석(吳昌碩, 1844~1927)이 획의 흐름과 동세(動勢)를 살려 바로 이런 느낌을 전서와 전각에서 잘 표현해 냈다. 동세(動勢)는 경중(輕重), 소밀(疏密), 장단(長短) 등의 조율에서 나온다. 오창석은 좀 과격하게 곡직(曲直)의 긴장성을 부각시켜 동세(動勢)를 만들었다. 서예적인 자세의 칼질을 한 것이다. 곡선이라도 곡으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직으로 나가면서도 곡의 에너지 즉 곡직(曲直)에너지가 서로 혼재된 묘미를 살렸다. 필법(筆法)과 도법(刀法)을 본격적인 하나로 만든 것이다.
붓으로 쓴 인고(印稿)를 칼로 새겨 재현하는 차원 정도로만 도법(刀法)을 이해한다면 전각(篆刻)을 예술로 부를 수 없다. 전각도 서예처럼 획의 예술이다. 다른 재료로 문자를 표현하지만 무슨 획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대한 중요성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서예 없는 전각은 없다. 흠잡을 곳 없을 정도로 디자인을 완벽하게 한 전각작품에 뭔가 부족한 맛이 난다면 필사(筆寫)를 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맛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붓맛과 칼맛 사이를 늘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이글이 앞으로의 한국전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