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의 시인 박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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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6    업데이트: 15-01-03 16:18

보도자료

[기고] 대구 남산동 성모동산
아트코리아 | 조회 1,066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가 서 있는 곳은 대구 달성공원이며, 이곳에 상화(尙火) 이상화(1901∼1943)의 대표작 ‘나의 침실로’ 일부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게로.’


이상화 1923년 발표 대표작   ‘나의 침실로’ 배경인 듯  대구의 역사적 가톨릭 성지  ‘영원한 안식처’ 찾는시인의 절실한 심정 드러나 


1923년 ‘백조’3호에 발표된 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라는 시와 함께 많이 회자(膾炙)되는 민족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의 배경은 대구의 ‘수성 벌판’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나의 침실로’ 시의 무대는 과연 어디일까?. 필자는 ‘대구 중구 남산동 성모동산’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상화의 출생지는 대구시 서문로 2가 12번지다. 상화 고택이 있는 곳과 성모동산이 있는 곳은 매우 가깝다. 나의 침실로 시의 ‘부활의 동굴’이라는 핵심 시어 속에 성모 동굴 성모상의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라는 시의 주요 정점(頂點) 내용과 삶의 현장 또한 일치된다고 하겠다.

‘상화는 1919년 3·1 기미독립운동에 백기만과 합세 8일에 거사한다. 하지만 상화는 다행히 검거망에서 벗어났다. 1918년 서울 중앙학교 수료 후 금강산,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였으며, 1919년 서순애와 결혼했다. 서순애 여사는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改宗)한 가톨릭 신자이다. 식민시대의 고통과 질곡, 만세운동의 좌절 등으로 1918년 방랑의 길에 올랐고, 장발의 거지꼴 모습으로 산중에서 끼니를 거르기도 하였다.’ (백기만 상화와 고월 중에서)

이 무렵 개종한 상화의 부인 서순애 여사는 뜨거운 열정과 기도로 상화의 생활과 마음을 정화(淨化), 안정된 시심을 갖도록 성심을 다해 조력한다. 특히 ‘너는 내말을 믿는 마리아’ ‘부활의 동굴’ 등의 시구에서 드러난 핵심시어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이와 관련된 가톨릭적인 내용이다.

대구 수성문화원에서 열린 제7회 상화 문학제(2012년 6월1일)에서 김주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석좌교수)는 마돈나는 원래 뜻은 ‘나의 여인’이라는 말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성모마리아’를 뜻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시에서 연마다 불리는 마돈나는 우선 애인으로서의 여인이지만, 후반부에서는 ‘너는 내말을 믿는 마리아’라고 동격화된다. 즉 마돈나는 마리아인 것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성모동산, 성모당은 1918년 완공되며 ‘나의 침실로’는 1923년에 백조 3호에 발표된다. 작품의 완성은 발표보다 앞섬을 감안할 때 작품시기와 성모당이 일치·부합된다. 전편에 흐르는 가톨릭적인 시심(詩心)과 성모동굴(부활의 동굴) 의 확실한 표현, 열기찬 호흡으로 새로운 시 세계를 연 ‘나의 침실로’는 ‘마돈나’ ‘침실’ ‘꿈과 부활의 동굴’ 등의 시어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는 시인의 절실한 심성이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

목우 백기만은 ‘상화와 고월’에서 상화가 1918년 중앙학교 수료 후 귀향, 강원도 일대를 방황하다가 쓴 작품이라고 했다. 대구로 귀향한 상화가 대구의 역사적인 가톨릭 성지인 남산동 성모당을 비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 건축양식인 성모당 성모 동굴을 목격한 후 이국적 정조(情調)에 젖었을 것이다. 시인이 성경에 자주 쓰인 ‘첫닭’‘눈물’‘마음’‘촛불’ ‘양털’‘연기’‘날이 새련다’‘ 쇠북’‘없는 소리’‘내 귀가 들음’‘믿음’‘어린애’‘가슴’‘침실’‘마돈나’ 등의 주요 시어로 작품을 완성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시의 배경 시점과 시인의 삶, 시인의 환경여건, 시어, 시의 주제, 시의 짜임 모두가 일치하는 게 당연하다.

일제강점기에 기댈 곳 없는 독립 투쟁의 가문에서 식민지의 현실을 사는 청년의 울분과 절망, 피폐함과 함께 시는 이상·희망·열정을 담았다. 조국 광복의 희원(希願)을 바라는 젊은 청년 시인의 기댈 곳 없는 허허로움을 목 축여주는 청량제가 바로 남산동 성모동굴이었을 것이다.
박해수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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