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의 시인 박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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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3    업데이트: 14-03-19 14:56

저서

1992_별 속에 사람이 산다
아트코리아 | 조회 956


육필의 체취를 별빛에 묻고 싶다.

시로서 별빛이 될 수 있을까,
시로서 별까지 갈 수 있을까,
시가 불빛이 되어 그리움과 외로운 영혼들을 불 밝힐 수 있을까,
걸어서 하늘까지 시와 함께 하염없이 걸어서 별 속에 모여 사는 착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시 같은 삶, 삶 같은 시.
시로서 사랑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내 가슴에 시 하나 외로운 등불로 밝혀 들고 별 속까지 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바다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별까지, 이승에서 저승으로, 나그네 별이 되어 떠돌고 싶다.
머리 위에 내리는 낙엽과 흰눈들, 저 밤새가 울고 가며 앓는 소리를 내듯 원고지를 더듬고 싶다.
좋은 시에는 좋은 숨소리가 들린다. 시가 내는 진정한 숨소리를 내고 싶다.
고통의 자리에 걸리는 등불과 저 별빛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 눈을 뜨고 좋은 시를 생각해 본다.

 

口 책 머리에

● 육필의 채취를 별빛에 묻고 싶다·박혜수


별에도 심장은 있다

명왕성 가까이
새벽별
나그네 별 1
별에도 심장은 있다
별은 왜 우는가
바다에 젖는 별
목성에서
저녁별
별 속에 사람이 산다
개밥바라 별

나그네 별 2
처녀 좌


주문진(注文律)에서

바다는 덧없이
임진강
기러기
바다에 안기어
서 있는 바다
유채색 바다
파도꽃
물바람
물새
물방울
바다에 누워
주문진(注文律)에서
묵호항


들길 따라서

혹판을 지우며
가을 느낌표
등나무 잎새로
저녁
들길 따라서
들불

풀에 대하여
무명초 껍질을 벗기며
스물의 화약 냄새
자유꽃

저어새


새해에는

첫 눈
도요새여
치자꽃은
가을빛
선생님, 낙엽에 붙어
혼자 누워
북행선(北行線)
흐린 날에
쇠뜨기 풀
저녁 눈
나무의 몸에서
걸어서 하늘까지
새해에는


口 해설

● 감성과 주술의 시학·이태수

 

감성과 주술의 시학
- 박해수(朴海水)의 시세계

이태수(李太洙)〈시인·매일신문 문화부장〉

1

감성이 두드러지는 정서공간을 빚으면서 젖은 목소리를 내는 시인 박해수(朴海水)는 신기할 정도로 같은 길만 걷고 있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는 단 한번도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고 주술성이 짙은 서정, 감정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서정적 자아의 추구에 탐닉하고 있으며, 유행의 물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으로 시를 빚고 있다. 그의 시적 자아는 자연이나 우주,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닿아 있으며, 논리나 이성보다는 느낌과 감성에 기울어져 있다. 음울한 색조를 띠고 있으면서도 고통이나 절망, 허무, 고독, 상실감을 되풀이해 노래함으로써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끈끈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의 의식을 물들이고 있는 액체성 이미지들은 거의 유사한 상상력의 공간을 빚으면서 젖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스스로도 그 속에서 헤엄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의 시는 거의 예외없이 물, 바다, 강, 눈, 눈물, 이슬과 같은 단어들로 채워져 있거나 풀, 나무, 꽃, 새 등이 들어앉아 있는 세계이다. 그런가하면 이같은 원초적 감정의 세계와 액체성 이미지나 식물적 상상력의 공간에는 빈번하게 별들이 떠오르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강조되고 있다.

... ...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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