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7    업데이트: 15-12-31 23:03

제6회 개인전

古稀展을 열면서
아트코리아 | 조회 971


古稀展을 열면서

 

三秋라는 말 그대로 석달 동안 제법 가을 맛을 내더니만 입동 전후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추적추적 초겨울 비가 내립니다. 이따금 한줄기 가벼운 바람만 불어도 노을 빛 나뭇잎들이 제 무게를 못 이겨 우수수 흩어지며 땅 위로 날아 내립니다. 초겨울 비에 세수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곱디고운 단풍잎 몇 장을 보면서 이른 봄 뾰족이 여린 잎새를 내밀어, 긴긴 여름 싱그러운 녹음으로 울울창창하던 모습들을 상기해 봅니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신 공자는 만년에 자신이 70평생 걸어온 학문의 길을 다음과 같이 회고 하였습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었고 마흔 살에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쉰 살에는 天命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로 들으면 그 뜻을 알았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하는 것을 따라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찮은 제가 어찌 聖人의 경지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필부도 나이 칠십 쯤되면 자기가 살아온 길을 한번쯤 성찰하게 되나 봅니다.


돌이켜 보면 서예는 60여년 세월동안 하루도 저의 가슴 깊은 곳에서 떠난 적이 없는 숙명적 동반자 였습니다.
저를 처음 서예의 길로 인도하신 분은 선친이셨습니다. 6세 무렵 선친께서 한지로 만들어 주신 공책에 구궁지를 끼우고 천자문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글씨를 한학과 서예의 대가 였던 顧堂柳敏睦(1910-1985, 35세 년상의 종질)선생이 보시고 격려하시던 모습이 어제 일인듯 눈에 선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과외 활동으로 한글서예를 익혀 각종실기대회에서 입상하였고, 이 무렵 밀양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시던 友竹楊鎭泥선생께 붓글씨를 배우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1965년에 대구로 와서 素軒金萬湖선생 문하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만 이후 십 여년 동안 생활인으로서의 책무에 골몰하느라 거의 붓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서예에의 열정은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들어 시내 일터 가까이 에서 松齋都利碩선생의 서실 현판을 보는 순간 발길이 그곳을 향하였습니다. 1984년에는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맞아 전국의 각 성당이 기념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환으로 대구광역시 소재 대명성당에 서 첫 개인전을 열어 한글 서예 30여점을 선보였습니다. 이때 華邨文榮烈선생을 만나 사사하면서 한글 서예의 현대적 의의, 미적특성, 현대인의 심미정서에 부응하는 조형질서의 창출 등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연한 것처럼 해오던 사업을 정리하고 1995년에는 드디어 신입생으로 대학에 들어가 서예를 전공하고 이어 대학원에서 서예사를 전공하였습니다. 이후 저는 이 순간까지 한글 서예에 대한 몇 가지 화두를
잡고 사색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서예가 다른 예술 장르와 구별되는 미적 특성을 크게 보면 筆劃이 함축하고 있는 고도의 형이상학적 정신미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글의 내용이 감상자에게 주는 정서적 감흥일 것입니다. 한문 문맹이 대부분인 현대인에게 한문서예는 서예술이 顯示하는 미적 특성 가운데 중요한 한부분에 대한 享受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가능성이 다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象形에서 출발한 한자와 달리 소리글자인 한글은 자형 자체가 단조롭고 'ㅇ'을 제외한 모든 자음과 모음이 굴신에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어, 현대인의 심미정서에 조응하는 조형질서를 창출하고 필획이 함축한 형이상학적 정신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문서예와는 다른 차원의 진지한 탐색이 요구됩니다.


저는 한글 고체의 조형에 바탕을 두면서 한문 篆隷의 필의를 援用하여 결구와 장법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실험을 계속하는 한편, 한글 궁체의 유려한 흐름을 살리되 정연한 균제미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이른 바 문명의 이기라는 기계의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현대인의 향수, 혹은 심미정서의 궁극적 귀착점이 되리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동안 서예공부를 해오면서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한글서예의 길로 인도해주신 故華邨文榮烈선생님, 한문 독해력향상과 서예술의 진면목 탐색에 도움을 주신 耕虛金南馨교수, 한문서예의 바른 필법을 제시해주신 土民全瑨元선생, 현대적 조형감각을 익히는데 도움을 준一思石龍鎭學兄대학과 대학원 시절의 은사님, 그리고 '敎學相長'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준 연묵회 회원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항상묵묵히 옆자리를 지켜주고 내조해온 아내의 희생 또한 길이 기억하려 합니다.


공자가 일흔에 도달한 "마음이 하고자하는 것을 따라도 법도를 넘지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라는 경지는 내 마음이 자연의 理法과 일체가된 '合自然'의 경지일 것입니다. 자연에서 비롯된 서예의 궁극적 지향점 또한 자연의 이법에 따라 바야흐로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는 不踰矩의 경지는 감히 넘보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손과 머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從心所欲' 그것에 도달하는 여정 또한 까마득히 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살다가 마는 것이 인생이듯이 완성으로 가는 길 그 어디쯤에 궁극적인 도달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不踰矩一合自然一'이라는 아스라한 빛을 향해 부단히 뚜벅 뚜벅 걸어가려 합니다.
같은 길을 가는 서예인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충고를 기다립니다.


2015. 12

聽石軒에서 류 지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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