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4    업데이트: 22-12-26 12:32

언론ㆍ평론/작가노트

방복희의 작품세계 인간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문’
아트코리아 | 조회 888

방복희의 작품세계
 
인간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문’
 
신항섭(미술평론가)
 
문은 세상과 내가 소통하는데 필요한 통로이다. 문이 열리면 세상을 향한 소통의 길이 생기고 문이 닫히면 세상으로부터 절연된다. 문을 여닫는 것은 내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다시 말해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선택은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가옥이나 건물에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문은 안팎으로 내왕하는 효용성이 우선한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인간 삶과 연계시켜 보면 매우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과 만나고 또 떠나는데 관여하는 중간자로서의 역할이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문은 이처럼 내적인 의미에 비중을 둔다. 그러기에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 및 즐거움의 표현에만 머물지 않는, 다양한 이미지 해석이 요구된다.

방복희는 오랜 동안 ‘문’이라는 소재로 작업해왔다.

채색화로 묘사되는 전통적인 한옥의 문은 동양적인 정서가 흥건하다. 격자문이나 아자문은 한지와 조화를 이루며 격조 높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유리창이 직접적으로 빛을 투과시키는데 비해 창호지를 바른 문은 빛을 여과시킨다는 점에서 간접적이다. 간접적인 조명의 효과를 나타내는 한옥의 문은 은근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지닌다. 그가 한옥의 문에 특별한 애정을 보내는 것은 전통적인 색채이미지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사실에 있다. 무엇보다도 오방정색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적인 색채이미지, 그 심오함에 매료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원색적인 색채의 빛깔을 안으로 응축시키는 전통적인 채색기법에서 심미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심미안이 감지해낸 전통적인 한옥의 문이 가지고 있는 품격과 아름다움은 유채화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전래의 생활습속에 의해 형성돼온 문화적인 특성은 서구적인 사실주의 개념과 유채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서로 다른 재료 및 기법의 두 가지 형식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의 최근 작업 가운데는 창문이나 벽의 틈새를 통해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을 대비시키는 작품이 있다. 벚꽃과 개나리를 대비시킨 대작은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 및 의미와 더불어 자연적인 이미지를 도입함으로써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능성 및 의미를 넘어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한 자연의 이미지를 불러들인다. 이제까지 문에 대한 의미 부여에 중점을 두었던데 반해 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을 도입함으로써 조형세계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감상자에 대한 배려일 수 있다. 철학적인 깊이 및 무게에만 치중했던 내용중심의 작업에서 소통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창의 이미지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신에 회화적인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다. 문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형태를 관념화하려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실상으로서의 문의 형태를 가지고 가되 회화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쪽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는 내용과 함께 개별적인 형식 그리고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관심의 환기인 셈이다. 결국 그림이란 형식과 내용이 등가를 이루고 최종적으로는 예술성의 구현으로 귀결하게 마련이다.
그는 문이라는 특정 소재를 개별적인 형식의 완성과 함께 높은 예술적인 가치라는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회화라는 예술양식을 통해 작가로서의 관점, 즉 세상과 마주하면서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의식을 반영하겠다는 시각도 이와 같은 목표를 향한 과정의 일부인지 모른다. 인간 삶의 시작과 마침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한 문을 소재로 작업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이야말로 인간의 생과 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덧글 0 개
덧글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