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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언론

[매일춘추] 달맞이꽃 - 2014.08.06 - 매일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943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되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토해내듯 노래하는 가수 장사익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왠지 간절하면서도 애달프기까지 하다.

 

애절함의 상징으로 시구와 노래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 달맞이꽃이다. 낮에는 태양빛에 부끄럽기라도 하듯 꽃잎을 아물고 있다가 밤이 되면 달빛과 함께 피어나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멀리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밤새워 새벽까지 기다린다는 의미로 기다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은은한 달빛 아래 노란색으로 환한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서 꿋꿋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월견초’ 또는 ‘야래향’이라고도 한다.

 

살아가면서 기다림이 없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보지 못하고 접해보지도 못한 낯선 그곳, 알지 못하는 그때를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또한 일상에서 갖가지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만남과 기다림은 병행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림에 푹 빠져 있을 때이다. 화가들의 삶이 무척 궁금할 당시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라는 작은 문고 책자를 읽고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다. 책의 내용은 모두가 잘 아는 천재 화가 이중섭에 대한 것이다. 이중섭은 1916년에 태어나서 1956년 4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지러운 시대에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궁핍한 가운데 그림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숙명처럼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순탄하지 못했다. 결국 7년 정도를 함께하고 이별을 하게 되면서 간절한 기다림의 편지가 시작되는데 그 편지를 옮겨 놓은 책이다. 삶에서 오는 궁핍함 때문에 생이별을 하고, 술을 마시고 밀려오는 고독감에 담배를 피우면서 쓴 편지이기에 지금까지도 이중섭의 삶은 많은 순애보의 대명사로 불린다.

 

‘어리석은 남덕은 지금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저 자신이 얼마나 당신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깊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늦지는 않았습니다. (중략) 하루빨리 오게끔 서둘러 주세요. 밤에는 당신의 사진을 안고 함께 자겠습니다.’ 이중섭 부인 ‘이남덕’의 편지 중 한 부분이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안타까움이기 전에 행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간절함이 있는 사람이 기다림도 크게 다가오고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희망도 가득하다.

 

그가 그린 ‘울부짖는 소’는 현해탄을 건너간 사랑하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애타게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안창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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