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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언론

[매일춘추] 크로스 - 2014.07.02 - 매일신문
아트코리아 | 조회 527

프로필 이미지오래전 낚시를 즐길 때가 있었는데 물안개 자욱한 새벽의 잔잔한 저수지는 고요하고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듯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그 잔잔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박함과 더없는 평화로움이었다. 많은 것을 품고 있는 그곳에서는 탐심과 탐욕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수평적 삶을 통해 너나 할 것 없이 온전한 사랑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높은 곳만 바라보지 않고 옆을 둘러보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 가운데 더없는 사랑이요 자비이며 절대 평등의 원칙이다.

도심 속 높게 치솟은 빌딩숲을 지날 때나 하늘을 찌를 듯한 울창한 나무숲을 지날 때면 왠지 엄숙해지며 또 다른 긴장감을 느낀다. 상하의 관계와 수직적 관계만 생각하면 우리는 불안하고 불편한 가운데 이기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명에 구속되어 주위를 살피고 둘러보기보다 높은 곳만 바라보고 욕심과 출세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은 수직적이며 종속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것은 오직 구하기만 하는 것이며 바라기만 하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맡길 때 마음의 풍요와 함께 더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절실함을 갖고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신의 더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우리가 하늘을 향해 간절히 간구하는 것은 수직적 사랑이며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용서하며 관대한 것은 수평적 사랑이다. 온전한 삶은 이처럼 수직과 수평이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지며 아름다운 삶, 참다운 삶이 된다. 모름지기 양팔을 들고 크로스 모양으로 서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케 되고 이 세상은 평화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이다. TV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팔을 수평으로 들고 서 있는 큰 조각상은 희생적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이 모든 것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크로스는 그냥 단순한 형상이 아니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이 존재해서도 안 되고 함께해야 하며 그렇게 될 때 이상적인 삶 가운데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더욱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는 옆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높은 곳만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음에서 오는 여유의 부족일 수도 있고 각박한 삶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으며 세상의 이치와 순리를 알지 못함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을 조금 알 것 같은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살필 줄 아는 마음이 자라고 있는 것은 나에게는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드넓은 황무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굳건히 서 있는 커다란 나무를 통해 특별함과 오로지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안창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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